국회 방호원들이 31일 오전 국회 본청 중앙 출입문을 열쇠로 걸어 잠근 채 지키고 있다. 평소 의원들이 드나드는 이 문을 봉쇄해 야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여야 ‘대화’ 여지는 남겨뒀지만
김 의장 ‘악역’ 꺼려 여-야 대치 장기화 조짐
김 의장 ‘악역’ 꺼려 여-야 대치 장기화 조짐
문학진 의원(맨 앞) 등 민주당 의원들이 31일 새벽 농성 중인 국회 본회의장에서 강제해산에 대비해 서로 묶을 ‘인간사슬’로 쓸 암벽등반용 줄을 바지춤에 찬 채 걸어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물리적 충돌을 향해 치닫던 국회 상황에 변수가 생겼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해온 김형오 국회의장과 강행처리를 요구해온 여당 지도부 사이의 온도 차로 연내처리가 무산된 것이다. 더욱이 김 의장을 압박하는 데 한계를 느낀 한나라당과, ‘강경 일변도’라는 비판에 부담을 느낀 민주당 지도부가 새해에도 대화를 계속하기로 함에 따라, 대치국면이 길어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파국을 향한 가파른 대립 국면에 변곡점을 마련한 것은 김 의장이다. 김 의장은 한나라당의 연내 법안 강행 처리 요구에도 불구하고 31일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긴급대표 회담을 제안하며 또 한번 절충을 시도했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 회담 결렬 뒤 “의장이 나서 정당 대표간 회담을 주재하라”고 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한 것이다. 전날 “이제 의장의 판단만 남았다”며 신속한 법안 심사기일 지정과 경호권 실행을 촉구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바람과는 다른 카드였다. 김 의장의 태도는 한나라당과의 견해차가 미처 조율되지 않은 탓으로 분석된다. 양쪽은 당장 직권상정 대상법안 범위를 두고 생각이 많이 다르다. 김 의장은 연말에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여야간 이견이 적은 민생법안 일부에 국한하자는 생각이었다. 김 의장 쪽은 쟁점법안의 경우, 뒤로 미뤘다가 1월8일께 처리하는 순서를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의 회담 제안 직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여야 합의가 다 돼 있는 민생법안만 처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당이 내놓은 85개 중점 법안을 모두 직권상정해야 한다”며 기세를 높였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김 의장에게 즉각적인 질서유지권 행사와 법안 심사기일 지정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김 의장의 모호한 태도에 한계를 느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이날 오후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결국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대화를 통한 타협 원칙에 합의했다. 물리력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들어낸 김에, 모든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김 의장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연내 85개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자신할 수 없게 된 만큼, 여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대의명분을 급히 부여잡은 셈이다. 연말 파국은 막았지만, 여야가 대화로 ‘폭탄의 뇌관’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박 대표와 정 대표는 대화 해결과 원내대표회담 재개 원칙에 합의했을 뿐 방송법 등 7개 언론관계법,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 등 쟁점법안에 대한 이견은 그대로 온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야가 결국 1월8일 임시국회 막판에 충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실제 청와대와 한나라당에는 민주당이 ‘처리 시한을 명시하지 말고 합의처리하자’는 언론관계법에 대해 “강행처리” 기류가 여전히 강고하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김 의장이 진을 빼서 고사작전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나온다. 결국 국회 대치상황은 여전히 불가측성이 높은 상태다.
성연철 신승근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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