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지 50년이 넘었지만
엄마 맘속엔 6살 그대로구나”
“그리운 영희, 내정이, 내준아. 너희들과 헤어진 지도 어언 50여년이 흘렀구나. 그동안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엄마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단다. 얘들아…, 보고 싶구나.”
팔순 노모의 가녀린 팔은 이내 떨리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손으로 입을 막고 서러운 눈물을 훔치던 변오남(86)씨가 다시 말을 잇는다. “너희들 모습도 많이 변해있겠지? 하지만 엄마의 마음 속엔 아직도 12살, 8살, 6살 그 모습 그대로인데…. 큰 딸 영희야, 큰 아들 내정아, 작은 아들 내준아, 보고 싶구나. 엄마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애끓는 모정은 끝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여느 이산가족과 마찬가지로 변씨도 ‘며칠만 있으면’이란 말을 뒤로 한 채 자녀들과 헤어졌다. “며칠만 있으면 기차도 다닌다니 어린 것들 고생시키지 말라”는 친척의 말에 황해도 연백군 온정면 상운리 외가에 아이들을 맡기고 ‘똑딱이’(통통배)를 타고 남으로 온 지 벌써 반백년. 변씨는 헤어지던 날 큰 아들 내정씨가 발바닥이 다 해어진 고무신을 신고 40리 길을 걸어가야 했던 일을 지금도 사무친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산 1세대 가운데 68%는 70살 이상 고령자다. 하루 평균 10명 꼴로 매년 3천∼4천명이 혈육을 만나지 못한 한을 품고 숨을 거두고 있다. 통일부가 대한적십자사·이북5도청 등과 함께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11일 변씨의 사연을 포함해 시범제작한 영상편지 5편을 공개한 정승훈 통일부 이산가족과장은 “지금까지 1600여명의 이산 1세대가 영상편지 제작 신청을 했으며, 오는 5월16일부터 연말까지 4천명을 목표로 영상편지 제작에 본격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산 1세대의 △신상정보 △헤어진 사연 △찾는 사람 △살아온 이야기 등을 담은 1인당 20분 분량의 영상편지를 동영상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북쪽 유족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다. 오는 8월1일부터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영상편지 제작을 원하는 이산가족은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를 직접 방문하거나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되고, 각 지역별로 설치된 이산가족 민원접수 창구에서도 신청을 받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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