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도쿄대 한국연구센터장
서독 ‘동방정책’ 교훈 삼아야
최근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적 대결구도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영유권 분쟁 등 과거 문제에 발목이 잡혀 동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0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에 온 강상중 도쿄대 교수(현대한국연구센터 센터장)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를 물었다. 오랫동안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고민해온 그는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만 동맹을 맺는 ‘양자간 관계’를 넘어 다국간의 안보·평화 네트워크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현 정세를 “미국과 중국이 격렬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개별 국가들이 경제협력·안전보장을 놓고 탐색전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경제분야에서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세안(ASEAN) + 한·중·일 3국’ 협력방안과, 미국이 중심이 돼 아시아 개별국가들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환태평양 전략적 파트너십’(TPP)이 각축을 벌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뤘음에도, 현재 전통적으로 유지해온 미국과의 안보동맹에 더욱 치우쳐 있는 상황이다. 강 교수는 이를 “위기 상황에 대한 긴급 피난처로 미국에 대한 의존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일본은 여전히 옛 체제의 뿌리가 깊어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안보적으로는 북한과의 관계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관계가 걸려 있는 한국은 미-중 패권 다툼에서 가장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 “만약 한·미·일 사이에 안보·경제 동맹이 형성되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한국 상황은 지난 냉전시기의 옛 서독과 비슷하다. 강 교수가 한국 정부에 대해 “국가의 틀을 넘은 지역적 평화체제를 구축해 통일을 이끌어낸 옛 서독의 ‘동방정책’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일본과 한국이 유럽에서의 독일과 프랑스 같은 구실을 할 때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옛 서독이 프랑스·영국 등 다른 유럽 나라들과 다자간 연합을 했듯이 동아시아의 경우 개별 국가들이 미국과의 양자간 연합만 맺고 있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이야기가 존경해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하던 얘기라고 덧붙였다.
부산/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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