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부재자투표 4·11 총선 부재자투표가 시작된 5일 오전 서을 서대문구선거관리위원회 제2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학생 유권자들이 부재자 투표를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우리도 제발 투표좀 하게 해주세요’
택배회사 노동자 “한번도 선거 못해봐”
택배회사 노동자 “한번도 선거 못해봐”
4ㆍ11 총선을 앞두고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 파악에 나서자 연일 수십 건의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투표일에 수학여행 지도를 따라가야 하는 교사들과 대형마트 판매 직원, 택배업체 배달 직원, 종소기업 비정규직 직원, 또 병원 노동자 등이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총선일에 수학여행 떠나는 학교들
“국회의원 선거날 아이들에게 놀러가는 걸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임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성남지회장은 4ㆍ11 총선거일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교조 성남지회는 자체 조사 결과 성남지역 20개 고등학교 중 7개 학교가 4ㆍ11 선거일을 끼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확인했다. 해당 학교 교사들은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됐다. 임 지회장은 “교장단들이 암묵적인 계획을 세운 것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선거일 수학여행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성남시 뿐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4ㆍ11 선거일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교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경기도교육청이 긴급 조사한 자료를 보면 경기 지역 초중고 14개교가 선거일을 끼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떠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노총에도 선거일 수학여행 제보가 이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로 유명한 경북 포항 동지고등학교(옛 동지상고) 2학년 305명과 교사 10여명도 선거일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동지고 관계자는 “연초에 수학여행 일정을 짰다. 일부 교사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다른 학사 일정이 꽉 짜여져 있어 부득이 4월 둘쨋 주에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정치적 의도는 조금도 없다”고 설명했다.
전교조 성남지회는 4일 “교직원들의 투표권이 위협받은 현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고 교육당국의 엄중한 문책을 촉구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택배 노동자들은 총선일에도 배달만
“OO 택배회사 직원입니다. 저희도 투표좀 하게 해주세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선거를 못해봤습니다.”
택배회사 직원 고아무개(29)씨는 “제발 투표 좀 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듯 말했다. 고 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4월11일 국회의원 총선거 날에도 새벽 5시에 일을 나가 12시간 근무한 뒤 집에 돌아온다”며 “투표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씨는 하루 평균 250여개의 택배를 배송해야 하는데 하루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수료가 차감된다고 했다. 고씨가 새벽같이 일을 나서는 이유다. 택배회사들은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에만 쉴 수 있게 한다는 게 고씨의 설명이다. 총선일 같은 임시 공휴일에 택배 노동자들은 쉴 수가 없다. 고씨는 전국의 10만 택배 노동자들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민주노총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들은 총선일에도 서비스만
서비스 업체들은 고객과의 예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선거일 근무를 강행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분당정비사업소 직원들은 최근 회사로부터 4월11일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주겠다”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정비 업무를 하다 말고 집에 다시 갔다 오기 힘들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곳 사업장은 평소 아침 8시 업무를 시작해 오후 5시30분 일을 마친다. 이에 대해 쌍용자동차 쪽은 “정비사업소 쪽은 쌍용차가 운영하지 않고 개인 사업자들이 운영한다. 우리가 손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쌍용자동차 분당정비사업소는 “예약된 고객들이 있어서 부득이 근무를 결정하게 됐고 대신 오전 10시30분까지 출근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참존화장품에서 운영하고 있는 피부관리소 참존스킨타운도 11일 직원들에게 정상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이곳 직원들은 평소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한다. 선거일도 평일처럼 근무하면 직원들은 선거에 참여하기 어렵다. 참존스킨타운은 <한겨레>가 5일 취재에 나서자 급히 업무계획을 철회했다.
판매 노동자들은 총선일에도 판매만
판매업종에 종사하는 직원들도 선거 일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수원의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민주노총에 “아직까지 총선 때 어떻게 근무하는지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답답하다. 점심시간을 쪼개어 투표소에 다녀와야 하는데 수원시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투표권 행사가 어렵다”고 신고했다.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노동자도 “투표하고 싶다”고 민주노총에 호소했다. 그는 민주노총에 보낸 편지에서 “시내와 떨어진 곳에 있다보니 직원 대다수가 휴게소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선거일과 같은 임시 공휴일은 더욱 바쁘기 때문에 휴게소로 출근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해야 한다. 지난 5년간 한번도 시내로 나가 투표한 적 없다. 휴게소 노동자들의 투표권 박탈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중소기업·축산업계 노동자들도 투표하고 싶다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자들도 선거 일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천 ㅅ엔지니어링에 근무하는 황아무개씨는 지난 4일 민주노총에 다급하게 편지를 보냈다. “선거 일에도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를 하는 것이 확정됐다. 투표를 할 수 없다”고 신고했다.
자동차 와이퍼 등을 생산하는 대구시 ㅋ사에서 일하는 ㅂ(37)씨도 불안하다. 4월11일 근무가 확정됐기 때문이다. 평일 근무는 보통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한다. 아직 이 업체는 선거일에 몇시까지 근무할 것인지 직원들에게 공지하지 않았다. ㅂ씨는 “제발 우리 회사가 오후 늦게까지 근무하지 말게 해달라고 민주노총이 공문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ㅋ사 관계자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생산업체이다 보니 물량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근무를 결정했다. 그러나 투표권 보장을 위해 오후 3~4시에 끝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양계장에서 근무하는 이아무개씨도 “선거 일에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한다”며 민주노총에 편지를 보냈다. 양계장은 365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일에도 출근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축산업계 노동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환경이다. 민주노총이 철저히 조사해 대책을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거일은 법정공휴일이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제2조 10의2 에 의거 관공서가 휴무하는 날이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무조건 쉰다. 그러나 일반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별도로 규정되어야 휴일이 된다. 그런 규정이 없으면 사업주가 선거일에 근무를 시킨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10조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반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선거권 행사를 요구하며 휴무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신고가 접수된 기업들에 노동자 투표권 보장을 해달라고 항의 할 예정이다. 또한 투표권 보장을 원천 차단하는 악질 사업장에 대해서는 노동부에 통보해 근로감독관이 강제 시정조치하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트위터(@ekctu)와 이메일(kctu@hanmail.net), 전화(02-2670-9100)로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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