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연세대 법학과 교수
긴급진단 김종철 연세대 법학과 교수
“글로벌” 내세우는 박대통령
전교조 법외노조화 이어
진보당 해산 청구 감행까지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소식뿐
“글로벌” 내세우는 박대통령
전교조 법외노조화 이어
진보당 해산 청구 감행까지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소식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알려진,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대북정책의 기준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다. 박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워 ‘비정상’ 국가 북한을 책망한다. 그렇다면 ‘정상’국가의 정부 수반인 박 대통령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충실해야 신뢰 프로세스가 원만히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많은 외유와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비추어 박 대통령은 분명 ‘글로벌’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서울발 기사들은 한국 민주화가 추구해 온 글로벌 스탠더드가 무너지는 소식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 부정, 경찰의 은폐 의혹, 검찰총장과 수사팀장 찍어내기,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정상국가에선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드디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청구를 감행하였다는 뉴스가 전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제도 자체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이례적이다. 실제로 정당해산을 실행한 나라도 냉전 시절의 독일과 선진 민주국가로 간주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터키 정도이다. 이 제도의 원조 격인 독일은 그들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독일은 인종학살 등 ‘전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전국가적으로 감행하고 세계대전을 도발한 전범국이다. 전범국한테 재생의 기회를 주는 전후 세계질서는 그 재발 방지를 위해 특별한 조처를 강구할 뿐만 아니라 전범국의 준수 의지를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의 경우 나치 세력이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전력 때문에 다시는 민주주의의 적에게 민주주의의 혜택에 편승하지 못하도록 반체제 세력의 정당 해산이나 기본권 실효 제도를 헌법화했다(군국주의 전력을 가진 일본의 경우는 재무장을 포기하는 평화헌법을 채택했다). 더구나 전후 세계질서가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냉전으로 귀착되면서, 한국전쟁과 동시대인 1950년대 분단국 서독은 나치 과거 청산과 적화(赤化) 방어 체제의 진정성을 서방 세계에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필요에 의해 아데나워 보수정권은 나치당을 계승하는 독일사회주의제국당과 독일공산당에 대한 해산을 감행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적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준수해야 함을 분명히 하였지만, 그 엄격한 적용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압력에 타협함으로써 결국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태도만으로는 해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그 기능의 훼손 위험, 위배 행위의 적극적 공격성 및 치밀한 계획성이 있어야 함을 분명히 하면서도 민주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착수(concrete undertaking)는 요건으로 삼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방어적 민주주의’의 남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독일 연방헌재의 실패를 교훈 삼아, 냉전을 지나 다극화된 국제 정세에서 정당해산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매우 엄격하게 설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가입하고 있는, 일명 ‘베네치아(베니스) 위원회’로 불리는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정당해산 제도에 대한 2000년 보고서를 통해 정당해산 제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재가 냉전 시절 제시한 기준을 대폭 강화하여, 폭력적 수단으로 민주헌정을 전복하는 것을 주장하는 정당만이 대상이 될 수 있고, 또한 그 정당이 실제적으로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해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정당해산 제도가 다른 헌정적 수단에 의해 민주적 기본질서의 수호가 어려운 예외적 상황에서 보충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점, 법치주의에서 요청하는 과잉금지 원칙을 충실히 준수하여 남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 정당 자체의 조직적인 위배행위여야 하고 일부 구성원의 돌출행위를 이유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 엄격한 기준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의해 터키의 정당해산 사건들이 유럽인권협약을 준수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충실히 적용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법무부의 해산 제소가 이런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고 있는지는 이제 헌법재판소의 엄정한 판단에 맡겨졌다.
헌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독재체제를 수립했던 유신의 망령을 극복한 것이 현행 헌법의 근본정신임을 명심하여 정상국가의 헌법수호기관답게 적법절차에 따른 엄격한 조사와 심리를 거쳐 이번 제소의 타당성을 심판해야 한다.
헌재의 심리와는 별개로 이번 제소절차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했는지에 대한 평가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혹여나 ‘아버지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 선거부정에 대한 민주시민의 비판을 물타기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저의가 조금이라도 숨어 있다면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헌법수호 의무를 부여받은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헌법수호를 위한 정부의 권한을, 헌법이 정한 필수 심의 절차에 참여하지도 않고, 외유중 전자결재의 방식으로 처리한 것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급박한 위험을 들어 이런 심의 과정의 졸속을 정당화하지만 민주헌정의 엄중한 위반 상황이 초래되지 않았음은 대통령이 외유중이라는 사실로부터도 반증되는 것이며, 향후 헌재의 심판이 최소한 수개월 이상 소요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정치적 갈등에 초연하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은 오로지 아랫사람들이 주청해서 마지못해 응하는 모양새는 삼권을 초월하는 국정통할적 독재자의 지위를 가졌던 유신대통령에게나 기대되는 것이다. 정부 수반이 국무회의를 비롯한 보좌기관들과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여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여야 할 정당해산 제소를 처리한 방식으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정당해산 제도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비상적 한계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일시적으로 포기하는 극약처방이다. 이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만으로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것에 버금갈 수 있다. 우리가 북한 세습 체제를 거부하는 것은 한반도 긴장을 볼모로 정치적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거부하는 일당독재 체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신뢰 프로세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선양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실히 이행했어야 한다. 우리가 ‘정상’국가답게 다원적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유지할 때라야 북한의 민주화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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