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둘로 갈라진 광주 민심
참배 온 안철수 ‘환영’ ‘반대’ 갈려
전문가들의 진단·예측도 팽팽
참배 온 안철수 ‘환영’ ‘반대’ 갈려
전문가들의 진단·예측도 팽팽
“우와, 안철수, 안철수 왔어야.”
“안철수 이 XXX야, 여그가 어디라고 낯짝을 디밀어?”
검정색 세단으로 몰려들던 20대 남녀의 탄성은 중년 남성들의 거친 욕설에 가뭇없이 파묻혔다. 17일 낮 2시, 광주 망월동 5·18 묘역 ‘민주의 문’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반감을 품은 30여명의 중년 남자들에게 점거된 상태였다. 그들이 펼쳐든 현수막과 손팻말은 안 대표를 비난하는 구호들로 가득했다.
“낙하산 공천 웬말이냐, 안철수 물러나라”, “광주 정신 짓밟은 안철수는 철수하라.” 이들은 자신들을 “‘공정경선 수호 시민연대’에 소속된 일반 시민들”이라 밝혔지만, 경찰은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광주공항에 도착한 시점부터 따라붙은 강운태·이용섭 후보 지지자들”이라고 했다.
고함과 몸싸움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찰과 경호요원에 둘러싸여 참배광장으로 향하는 안 대표 얼굴에선 당혹감이 묻어났다. 강운태·이용섭 후보 지지자들은 안 대표와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묘역에 머문 20여분 내내 막말과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지켜보던 시민과 5·18 단체 관계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묘역 입구에서 행사 천막을 지키던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의 윤현선(70) 이사가 소리쳤다. “이놈들아, 5월 영령들 잠든 데서 꼴사납게 떠들지 말고, 싸울라믄 느그들 당에 가서 싸워라.”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논란이 되는 공천 문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금남로 밥집에서 만난 이영호(42·무역업)씨는 “공천 절차를 두고 말이 많지만, 토호와 유착한 관료 정치인들의 독주를 막으려면 윤장현이 되는 게 옳다”고 했다. 조대현(42·회사원)씨는 “윤장현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전략공천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지지 정당이 있느냐는 물음에 두 사람은 약속한 듯 “범야권”이라 답했다.
동구 동명동에서 커피하우스를 하는 정양석(47)씨는 “강운태·이용섭 두 사람이 ‘광주 정신’을 입에 올리는 것이 우습다. 전략공천이 시민을 무시한 횡포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시에 합격해 탄탄대로를 걸어온 두 사람의 관료 이력을 꼬집는 말이었다.
신도심인 상무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재식(52)씨는 “새정치연합 지도부도 자기들 하는 짓이 나쁜 짓이란 걸 아니까 한밤중에 날치기하듯 윤장현을 공천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광주시장 후보의 필수 덕목으로 “공무원 장악력과 중앙정부 인맥”을 꼽았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나 투표 기준은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조선대 앞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성령(25)씨는 “서울에서 박원순, 정몽준이 출마한 건 아는데, 광주에서 누가 나왔는진 모르겠다”고 했다. 보험설계사 김지영(30)씨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선거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도 “굳이 투표를 해야 한다면 ‘정치꾼’이 아니라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을 뽑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양동시장에서 만난 포목상 한아무개(64)씨에게선 “광주를 발전시킬 사람을 뽑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사 출신 시민운동가라는 윤 후보의 이력을 두고선 “병원으로 돈 벌고 나니 정치하려고 안철수 바짓가랑이 붙들고 있는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 집단의 예측과 진단은 팽팽했다. 최영태 전남대 교수는 “강운태·이용섭 후보가 무소속 단일화를 성사시키면 절대적으로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그 근거로 “전략공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고, 광주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를 떨어뜨려도 전국 구도에서 야권에 불리할 게 없다는 점”을 꼽았다. 역대 주요 선거에서 표출된 광주 유권자들의 ‘전략 투표’가 이번 선거에서 재연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박구용 전남대 교수는 윤 후보의 승리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윤 후보 지지도가 낮은 것은 강운태·이용섭 후보의 지지층이 견고해서라기보다, 윤 후보의 경쟁력에 대한 확신 부족과 전략공천에 대한 일시적 반감 때문”이라며 “남은 기간 안 대표 등 지도부가 공을 들인다면 근소한 차이로나마 승리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후보의 지지세력인 시민단체들은 뚜렷한 지침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지역 시민단체 연대기구인 광주시민단체협의회는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광주 전략공천이 발표된 직후인 7일 “정당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광주 시민들의 선택권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시민단체 대표들은 격론 끝에 8대6으로 성명서 채택을 가결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성명은 전략공천을 결정한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겨냥한 것일 뿐, 함께 시민운동을 해온 윤 후보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윤 후보를 공개 지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미희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정책이 나오면 그에 대해 평가하는 정도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자신들과 정체성이 같다는 이유로 윤 후보를 지지하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였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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