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6·4 지방선거에 나서는 광역단체장 면면을 한눈에 살펴보는 기획을 20일부터 시작합니다.
7선의 국회의원, 2002년 유력 대선주자, 한나라당 대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63) 후보의 경력이다. 화려하다. 그런데 그는 억울하다고 한다. “내가 기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사람들은 나를 단지 재벌 2세로 바라본다.”(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중)
그의 바람대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이란 수식어를 떼고 살펴보자. 정 후보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년, 피난지인 부산 범일동에서 8남1녀 중 6번째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와 자리 잡은 터는 장충동. 박근혜 대통령과는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건장한 체격으로 주먹클럽과의 싸움에 종종 휘말리곤 했던 그의 청소년기는 ‘계동거리 잔혹사’였다. 그래도 197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명석했다. 부친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당시 “우리 집안에 서울대생이 났다”며 매우 기뻐했다 한다.
대학시절에는 각종 스포츠에 몰두했다. 강원도에서 열린 스키 종합선수권대회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였다. 당시 대학가를 휩쓸던 ‘박정희 대통령 3선 개헌 반대’, ‘10월 유신 반대’ 등의 주장에는 큰 관심사를 두지 않았다. 대신 유학을 떠났다. 미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땄다. 귀국한 그에게 아버지는 “중공업을 맡아라”고 한다.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을 때, 31살이었다. 그러나 해외유학 중 자유와 민주주의에 매료된 그의 관심은 정치에 더 쏠렸다. “내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계속 일한다면 현대중공업은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지 않은가.”(책 <나의 도전 나의 열정> 중) 정치에 꿈이 있었던 부친도 그의 정치 입문을 도왔다. 1988년 13대 무소속으로 ‘현대 도시’인 울산에 출마해 국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다. 37살이었다.
뚜렷한 정치 궤적이 없었던 그를 대선주자 반열에 올린 건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았다. 치열한 스포츠 외교 끝에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쓰자, 그는 단숨에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권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 대결에서 패배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다. 그러나 대선 하루 전날 밤, 지지를 철회한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관계는 혈맹’이라는 단일화 합의의 전제를 어겼다는 게 이유다. 그 뒤 한동안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배신자’,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경쟁 후보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2012년 대권에 다시 도전했으나, ‘대세론’을 등에 엎은 박근혜 전 대표와 경선 규칙으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경선을 포기했다.
현대중공업 회장·피파 부회장…
37살에 울산 출마 국회 첫발
‘대권 꿈’ 노무현·박근혜에 밀려
27년 의정생활, 무소속·비주류 행보
입법 실적 15건 발의로 ‘저조’
정 후보의 정치 스타일은 ‘마이웨이’다. 5선의 의정생활 대부분을 무소속으로 지냈고,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에도 비주류로 남았다. “파벌은 폐쇄적이고 과거지향적이다.” 그의 소신이다. 다른 분석도 나온다. 그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10년 함께 일했던 당직자의 말이다. “당시 기업을 경영하듯이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는 기업가적 마인드가 강해보였다. 정당구조에서 여당은 당내 의견 조율도 하고 청와대 의중도 살펴야 했는데,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치고 나가기도 했다.”
그의 약점이 6·4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상당히 극복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새누리당 소속 수도권 의원의 평가다. “말이 어눌하고 약간은 일방적인 대화 방식이 걱정이었는데, 최근에는 토론도 유연하게 주도하고 대중 연설도 잘 한다. 서울 시장에 정치 생명을 걸고 많이 준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27년간의 의정생활을 살펴보니 입법 실적이 많지 않다. 14건의 법안을 대표 발의, 1건의 법안을 단독 발의했다. “저는 법을 많이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법이 많다고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법안에) 반대할 때 저는 찬성하기도 한다.”(5월9일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후보 2차 토론회) 그는 여성의 사회 진출 등에 대해선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공공기관에서 여성 임원 비율을 5년 안에 30%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를 대표발의한 바 있다.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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