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8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예방한 열린우리당의 정세균 의장(가운데), 박병석 의원(왼쪽) 등과 환담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와 통합 유도” “확대해석 경계”
‘정치적 계승자’ 첫언급…열린우리 반색
DJ쪽 ‘적통자 논쟁’ 우려해 “덕담일 뿐”
김대중 전 대통령이 8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한 정세균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 ‘정치적 계승자’라고 지칭하며 ‘전통적 지지층 복원 노력’을 당부한 대목은 여러모로 예사롭지 않다. 김 전 대통령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든, 표현의 강도와 발언의 시점이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3년 분당 이후,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은 채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자신을 찾아온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들에게 덕담을 건네곤 했으나, ‘정치적 계승자’라는 명시적인 표현을 쓴 적은 없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최근 병상을 오르내린 노 정치인이 ‘계승자’라는 표현을 쉽게 꺼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10·26 재선거 참패로 풀이 죽은 열린우리당은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신기남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노선이 정통적인 민주개혁세력의 노선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전병헌 대변인은 ‘계승자’ 발언을 가장 먼저 소개하며 의미를 강조했다. 다만, 이강래 의원은 “너무 당연한 얘기이므로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정신차려서 열심히 하라는 것”이라고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여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전통적 지지표의 이탈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전통적 지지층 복원 노력’을 처방전으로 제시했다. 호남과 수도권 및 개혁세력의 이탈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은 “여러분이 ‘본전’을 놓쳐서는 안 되고, 정당 정치는 내 기본세력을 금쪽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열린우리당 안에서 나오고 있는 민주당 등과의 통합론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당장 “한쪽으로 힘을 몰아줘 자연스럽게 통합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희망섞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배기선 사무총장은 “민주, 평화세력이 손을 잡으라는 당부”라며,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합과 연결지었다. 열린우리당 쪽의 해석과 달리, 김 전 대통령 쪽은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덕담으로 하신 말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언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적통자 논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최근 폐렴으로 두 차례 입원했던 김 전 대통령은 이날 1시간15분 동안 이어진 면담 내내 대화를 주도하며 건강을 과시했다고 전 대변인이 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민주당은 그런말 10번도 더 들어” 유대변인 “늘 하는 인사말 정도” 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계승’ 발언에 대해, ‘국민의 정부’ 승계를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경쟁관계인 민주당은 “늘 하는 인삿말 정도”라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의 그 말씀은 예전에 함께 정치하던 사람에게 늘 하시는 말씀”이라며 “민주당은 그런 말을 10번도 더 들었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지난 2월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찾아갔을 때는 ‘민주당같이 훌륭한 정당이 어디 있느냐, 잘 발전시켜 달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며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적자’란 뜻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사상과 노선을 잘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지, 한번 방문해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열린우리당이 이렇게까지 선전하는 것을 보면 상황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한화갑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발언과 열린우리당의 반응을 보고받고 그저 웃기만 했다고 유 대변인은 전했다.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정치를 잘하라는 조언 정도일 뿐, 크게 확대할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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