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 들어가는 동안 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공공연구노조 조합원들이 박 본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 본부장은 이날 간담회 인사말을 통해 과거 황우석 사태와 연루된 자신의 행적에 대해 사과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임명된 지 나흘 만에 사퇴했다.
박 본부장은 11일 저녁 6시30분께 과기부를 통해 밝힌 ‘사퇴의 글’에서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드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11년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며 사퇴 글의 대부분을 ‘황우석 사태’ 책임론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고 해명하는 데 할애했다. 박 본부장은 “황우석 논문 사기사건의 주동자나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국의 저명한 줄기세포 연구자들도 모두 감탄할 정도의 연구가 조작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쏟아지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썼다.
박 본부장은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주시고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저녁 자진사퇴했다. 사퇴에 앞서 이날 오후 박 본부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있는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박 본부장의 ‘자진사퇴’는 학계를 비롯해 반대 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청와대도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7일 박 본부장이 임명된 직후 과학계는 ‘황우석 사태의 관리 책임뿐 아니라 과학윤리적 문제까지 있다’며 들끓었다. 과학기술인단체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대표 윤태웅 고려대 교수)가 9일 임명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청와대로 전달했다. 박 본부장이 지난 10일 국민들 앞에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같은 날 청와대가 “과와 함께 공도 평가해달라”고 엄호에 나섰으나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 사퇴 직후 “청와대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짤막한 공식 입장을 내놨다.
형식은 자진사퇴이지만 사실상 임명철회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날 박수현 대변인이 박 본부장 인선 배경을 강조했던 데 대해 “박 본부장으로서도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인사권자(대통령)로서도 어떤 뜻으로 인사를 했는지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을 밟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10일 ‘박기영 포기’ 방침이 정해졌던 셈이다. 청와대는 ‘박기영 논란’을 주말을 넘기지 않고 정리하긴 했으나, 정치권 등으로부터 “국민 상식과 거리 먼 인사 스타일”, “끼리끼리 인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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