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 전 국방부장관이 2010년 11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 12월11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이유가 이명박 정부 당시 맺은 ‘비공개 군사협약’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9일 “2009년 원자력발전소 수주 계약을 맺으면서 유사시 한국군의 개입을 약속하는 비공개 군사협약(협약)을 주도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임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을 둘러싸고 한달 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은 이제, 국회 동의 없이 군사협약을 맺은 이명박 정부의 ‘헌법 위반’ 논란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 장관(2009년 9월~2010년 12월)이었던 김 전 장관은 9일치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랍에미리트 원전 사업은 거의 프랑스에 넘어간 상태였다. (아랍에미리트 설득을 위해)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 ‘올인(all-in)’한다는 걸 보여줬다”며 “아랍에미리트가 군사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한국군이 가는(개입하는)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핵발전소 수주 발표 한달 전인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를 다녀왔다.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선 정부가 아랍에미리트 분쟁 때 한국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군사협력 비밀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김 전 장관은 “비밀 약속은 없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이날 김 전 장관이 비밀군사협약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국회 위증’ 사실이 확인되고, ‘임종석 실장의 아랍에미리트 방문 논란’은 ‘이명박 정부의 헌법 위반 논란’으로 쟁점이 바뀌고 있다. 논란 초기부터 이명박 정부의 비밀군사협약 의혹을 꾸준히 지적해온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부 문제 되는 조항을 수정하자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아랍에미리트에 갔고, 이에 아랍에미리트가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이 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없는 ‘유사시 군 자동개입’ 조항을 국회 비준 없이 아랍에미리트와 약속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중동 지역 분쟁에 한국군이 연루될 수 있는 외교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비밀에 부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종대 의원은 “당시 김태영 장관이 서명한 것을 국문으로 번역한 게 외교부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이건 미친 짓이다. 국방부 걔들은 미쳤다’라는 반응이 외교부에서 나왔다고 한다”며 당시 외교부도 협약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김 전 장관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책임을 지고 (국회 비준이 필요 없는)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 실제 문제가 일어나면 그때 국회 비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60조 1항)을 침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과 함께, 진상을 밝히고 협약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어 “심각한 헌법 위반 행위로 국회는 즉각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정부 역시 제기되는 의혹과 문제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명박 정권 당시 책임자들에 대한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도 “헌법을 무시한 엠비(이명박 전 대통령)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후예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등 엄중한 조치를 해야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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