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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5 19:33 수정 : 2019.10.26 13:34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국 사태가 총선에 영향을 미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누가 법무부 장관이 되는지가 대체 사람들 먹고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총선 변수가 되겠나?”

이달 초 여당의 한 중진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했다는 ‘정세 진단’을 전해 들었다. 처음엔 언론의 보도 프레임이 지나치게 불리하게 짜이는 것을 막아보려는 전략적 언사이겠거니, 흘려 넘길 작정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발언에 아연해졌다.

“조국 사태는 오히려 긍정적 요소가 있다. 연말쯤 되면 당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빠질 것으로 봤는데, 조국 사태 덕에 30%대 후반에서 버텨주고 있는 거다. 안 그랬으면 내년 총선은 정말 힘들어진다.”

조국 사태는 오히려 지지층의 응집력이 이완되려는 시기에 예기치 않게 찾아온 호재라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대선, 총선 같은 전국 단위 선거는 물론, 지도부 교체가 유난히 빈번했던 그 당에서 숱한 당직 선거를 치르며 단련된 ‘전문가’의 분석이었기에 새겨들을 구석도 없진 않았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정국은 ‘서초동 대 광화문’의 세 대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서초동 집회의 규모와 열기에 고무된 여당은 광화문 집회를 ‘동원·폭력집회’로 깎아내리는 데 열심일 뿐 상황의 엄중함도, 가파르게 양극화하는 여론 지형의 심각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조국을 내치면 핵심 지지층이 떨어져나간다’며 집안 단속에 급급하던 초기 인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간 게 없었던 셈이다.

조국 장관이 물러난 지금은 어떤가? 이번주 초 여당 지도부가 느닷없이 ‘10월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우선 처리론’을 꺼냈다. 누가 보더라도 ‘10월 처리’는 실현되기 어려운 카드였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과 ‘패스트트랙 공조’에 가담했던 다른 야당들은 애초 합의대로 12월 초 선거제도 개편안과 함께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10월 처리는 어려워졌으니, 이제 연말까지 여론을 모으고 야당을 설득하는 과정이 남았다.

여당 의원들 말을 종합하면, 지도부의 10월 ‘공수처법 우선 처리’ 제안은 조 장관 사퇴 뒤 이반 움직임을 보이는 지지층을 붙들기 위한 ‘알리바이 만들기’ 성격이 짙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검찰개혁에) 공수처 외에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신속 처리를 당부한 터여서, “할 만큼 했다”고 내세울 근거도 필요했을 것이다. 여당 지도부의 모든 신경이 핵심 지지층과 청와대에 쏠려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검찰개혁이 집권여당의 최우선 의제가 된 것도 지지층의 요구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검찰의 권력화·정치화를 방치한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지지층 정서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여러 논란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조국 법무부 장관-윤석열 검찰총장 체제’를 밀어붙인 것도 ‘총선 전 검찰개혁 완수’라는 명분을 빼고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환상의 조합’이라던 ‘조-윤 체제’는 실패를 넘어 재앙으로 막을 내렸다.

이철희, 표창원. 민주당의 두 초선의원이 열흘 간격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조국 수호’의 최전선이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치적 자아 분열’을 감수하며 분투했던 의원들이다. 25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기무사 계엄 문건 대응과 대입 정시 확대 등 교육 관련 현안 등이 주로 논의됐을 뿐 조국 사태에 대한 집권당 차원의 성찰이나, 초선의원 불출마 선언과 관련한 쇄신 문제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력한 ‘차기 카드’로까지 거론되던 조국 장관은 만신창이가 돼 퇴장했다. 아내는 구속되고 자녀들은 분란에 휩싸였다. 아픈 것은 조 전 장관 가족만이 아니다. 수십년 인연을 쌓고, 3년 전엔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던 지인들이 조국 사태로 등을 돌린 사례가 주변에 차고 넘친다. ‘조국 수호’를 외친 쪽도, ‘왜 조국이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표한 쪽도 상처가 깊긴 매한가지다. 초선의원 두 명의 대속(代贖)으로 끝낼 일인가? 촛불동맹이 깨졌다.

이세영 정치팀 데스크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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