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술잔에 각자 다른 술을 따른 채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인의 음주 습관을 조사해 지난 연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맥주잔(200㎖) 기준으로 남자는 1회 평균 6.5잔, 여자는 4.7잔을 마셨다. 맥주 평균 도수를 4.5도(%)라고 가정해 알코올양으로 환산하면 각각 46.8g, 33.8g이다. 알코올양은 음주량(㎖)×도수(%)×0.8로 계산한다. 소주(50㎖)는 남자 7.8잔, 여자 4.5잔을 마신 것으로 조사돼 알코올양(남자 62.4g, 여자 36g)으로는 맥주보다 많았다. 남자의 경우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알코올의존연구소(NIAAA)가 권장하는 음주한도 하루 56g(소주 7잔)을 넘는 양이다. 여자는 한도량 42g(5잔)보다는 적었다. 이 연구소의 기준은 그 정도의 술을 마셨을 때 100명 중 2명이 알코올사용장애(알코올 남용·의존) 증세를 보이는 수준이다. 이 연구소는 남성의 경우 일주일에 196g(소주 3.4병), 여성은 98g(1.7병) 이상 마시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일부는 식도의 점막을 통해 흡수되지만 90% 이상이 위에서 흡수된다. 혈관을 통해 간으로 이동한 알코올은 알코올탈수소효소(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된다. 이 물질은 단백질과 잘 반응하고 알코올보다 독성이 강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아세트알데히드의 발암성 등급을 2B(인체발암 가능물질)로 매겼다. 하지만 술을 마셔 생기는 아세트알데히드는 술과 마찬가지로 1급(인체발암물질)으로 규정했다.
알코올 분해 속도 1시간 평균 10g
소주 1병 6시간 마셔야 무리 없어
숙취 주범 아세트알데히드 ‘간 킬러’
분해 촉진·생성 억제가 해소책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술에 약해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과 2차 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는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혈중 알코올 농도가 1일 때 뇌의 알코올 농도는 1.75나 돼 더 민감하다. 간에서는 1.48이다. 뇌에서 알코올이 감정 중추를 관장하는 변연계를 자극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울거나 화를 내는 등 감정 통제에 이상이 생긴다. 전두엽을 공격하면 행동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해마에 손상을 주면 기억상실이 생겨 ‘필름이 끊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알코올이 대사된 아세트알데히드는 다시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ADLH)에 의해 아세트산으로 바뀐 뒤 이산화탄소와 물로 변해 몸속에서 빠져나간다. 하지만 효소들이 미처 알코올을 분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면 몸속에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되고 이로 인해 피로감, 수면장애, 심계항진(심장박동이 불규칙하거나 빨라지는 현상), 떨림, 구토, 설사, 짜증, 우울과 불안, 집중력과 단기기억력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른바 숙취 현상이다.
또 아세트산이 미처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지 못하면 지방산과 콜레스테롤로 몸속에 쌓여 지방간과 고지혈증을 일으킨다. 결국 주량이란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바꾸고 다시 아세트산으로 분해한 뒤 물로 배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김대진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주량은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능력의 개인적 편차가 크고 스트레스와 몸의 상태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한 차이도 있어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평균적으로 성인이 분해할 수 있는 알코올의 양은 한 시간에 평균 10g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도짜리 소주 한 병이면 알코올양이 360㎖×0.2×0.8=57.6g이므로, 6시간 동안 천천히 마셔야 아세트알데히드가 쌓이지 않고 숙취도 없다는 얘기다.
특히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에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얼마 없어도 분해 작용을 시작하는 형(Ⅱ형)과 아세트알데히드가 많이 쌓여야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하는 형(Ⅰ형)이 있는데, 동양인은 Ⅱ형이 없거나 부족해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속도가 느리고 숙취도 심하다. 황인종의 경우 Ⅱ형 결핍이 30~50%에 이른다. 김 교수는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금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가별 음주 분포를 보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고위험군이 저위험군보다 적은 피라미드형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고위험군이 훨씬 많은 표주박형이다.
자신의 음주 습관이 고위험군인지 여부는 ‘케이지’(CAGE) 알코올중독 검사로 자가진단할 수 있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음주 문제로 주변 사람들한테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는지, 음주 문제로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숙취 해소를 위해 술을 찾은 적이 있는지 등 네 가지 질문에 한 가지 이상 ‘예’라고 대답했다면 술을 조심해서 마셔야 한다. 해당하는 항목이 두 개면 고위험군으로 알코올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 세 개 이상일 때는 알코올중독이므로 의사와 반드시 상담해야 한다. 김대진 교수는 “술은 크게 뇌와 간, 췌장에 피해를 입히는데 사람마다 주요 피해 부위와 정도가 다르다. 술이 세다는 것은 알코올 분해 능력이 크다는 것이지 술로 인한 장기 손상에 강하다는 것이 아니어서 술이 센 사람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숙취에서 탈피하려면 아세트알데히드의 양을 줄여야 한다. ‘4-메틸피라졸’처럼 아세트알데히드를 줄여주는 약물 후보에 오른 물질이나 디설피람(disulfiram)처럼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를 저해해 숙취를 촉진함으로써 술을 끊게 만드는 혐주약은 있지만 술을 깨게 하는 약은 없다. 다만 효소를 활성화해 숙취를 완화해주는 ‘보조식품’들이 숙취해소제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숙취해소제에는 크게 알코올탈수소효소의 활동을 저해해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의 활동을 촉진해 아세트알데히드를 빨리 산화시켜 몸 밖으로 빼내도록 하는 것이 있다. 많은 숙취해소제들은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 촉진제다.
이강만 이화여대 약학과 교수는 “아세트알데히드탈수소효소 촉진제는 숙취는 빨리 깨게 하겠지만 아세트산을 많이 만들어 궁극적으로 지방간과 고지혈증 부담은 커질 수 있다. 알코올탈수소효소의 활동을 방해해 애초 알코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뀌는 양을 줄이는 것이 간 건강에는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 연구팀이 알코올과 가시오갈피 등 약재로 만든 숙취억제제를 실험쥐에게 15일 동안 복용시킨 결과 알코올만 섭취한 쥐들은 체중과 간 무게, 중성지방이 크게 증가한 반면 생약재를 함께 먹은 쥐들은 물만 먹은 쥐들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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