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4일 미국의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 탐지기에 탐지된 충돌하는 쌍성 블랙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화면.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제공
[토요판] 별
중력파
중력파
▶ 100년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그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봤다. 워낙 미세한 변화인지라 인간이 이를 측정할 순 없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한 세기 만에 중력파는 실제로 검출됐다.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될 새로운 열쇠가 주어진 것이라며 세계 과학계는 흥분해 있다. 중력파를 통해 인류가 알게 될 우주의 비밀은 어떤 것들일까. 인류 과학은 어디까지 진보할까.
영화 <인터스텔라>(2014)의 과학 자문을 맡은 이는 킵 손(76)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다. 그는 영화에서 ‘중력파’를 비중있게 다루고 싶었다. 킵 손의 상상 속 브랜드 교수(마이클 케인)는 중력파를 연구하는 학자다. 영화 속 현재의 수십년 전인 2019년, 20대의 브랜드는 중력파를 검출하는 ‘라이고(LIGO) 프로젝트’의 부책임자다. 어느날 강력한 중력파가 포착됐는데, 분석 결과 블랙홀 주변을 도는 중성자별에서 나온 것이었다. 브랜드는 꾸준한 데이터 수집을 통해 파원의 방향을 알아냈다. 놀랍게도 토성 주변이었다. 토성이라니. 그런 상황은 불가능했다. 토성 주변에 블랙홀과 중성자별이 있다면 이미 오래전 토성은 파괴됐을 것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도 엉망이 된다. 하지만 엄연히 중력파는 토성 쪽에서 흘러나왔다. 브랜드의 머리에 떠오른 설명은 단 하나, 웜홀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토성 인근에 다른 우주와 태양계를 잇는 웜홀이 생겼고, 웜홀의 반대쪽에 있는 블랙홀과 중성자별이 내뿜는 중력파가 웜홀을 통해 태양계에 전해진 것이다.
1광년의 머리카락 정도 변화
새로운 인류의 거처를 찾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노력은 이 웜홀을 통해 가능했다. 하지만 킵 손의 상상은 영화에 담기지 못했다. 킵 손은 자신의 책에서 그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고 썼다. 킵 손은 1983년 라이너 바이스, 로널드 드레버 등과 함께 실제 라이고 프로젝트를 창립한 당사자다. 중력파 관측에 성공한 올해 노벨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점쳐진다.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 지 꼭 100년 만인 지난 11일 라이고 과학협력단(LSC)은 사상 처음으로 중력파를 실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검출된 중력파는 지구에서 13억광년 떨어진 곳에서 왔다. 중력파는 질량이 무거운 물체가 급속한 가속을 겪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번에 검출된 중력파도 태양 질량의 29배, 36배인 쌍성 블랙홀이 대충돌을 일으킨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거대한 블랙홀이 빛의 속도로 합쳐지면 중력 에너지가 주변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잔물결이 호수의 표면을 흔들듯 중력파는 시간의 흐름이나 물체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변화시킨다. 지난해 9월14일 오전 5시51분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과 워싱턴주 핸퍼드에 설치된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의 탐지기도 이 영향으로 아주 작게 요동했다. 파동의 크기는 4×10-21㎞. 최대 진폭을 환산하면 9조5000억㎞가량인 1광년을 기준으로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중력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서로를 잡아당기는 힘이란 의미에서 ‘만유인력’으로 불린다. 하지만 우린 일상에서 지구의 중력 말고는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중력은 터무니없이 약하다. 아인슈타인도 중력파는 파동의 세기가 너무나 약해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력파는 이런 성질 탓에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주 멀리까지, 심지어 시간을 거슬러서도 전달된다.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 ‘가르강튀아’ 안으로 떨어진 주인공은 과거의 어린 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데 중력파를 이용했다.
중력파 검출 장비는 이 때문에 ‘공학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정교하다. 직각 방향으로 놓인 두 개의 파이프 안을 레이저가 오가며 위상 변화를 탐지한다. 4㎞ 길이 파이프 안을 오가는 과정에서 레이저가 공기분자에 흡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압력은 대기압의 1조분의 1로 유지한다. 레이저를 유도하는 거울은 300분의 2.5㎝ 이내의 오차로 매끈하게 가공돼 있다. 거울을 지구 크기로 바꿔보면 2.5㎝ 이상의 굴곡이 없을 만큼 매끈한 표면을 갖고 있는 셈이다. 13개국 100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한 라이고 과학협력단엔 14명의 한국인도 있다. 한국 연구진은 2002년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제안으로 연구자 모임의 형태로 출발해 2009년 협력단에 정식 합류했다. 지난 18일 이 교수를 만나 중력파 관측의 의미 등을 물었다.
‘인터스텔라’에서 빠진 중력파
몰랐다면 영화속 탐사 불가능
터무니없이 작은 힘이지만
우주 멀리, 시간도 거슬러
13억년 만에 지구에 닿았다 2022년께 검출기 5개로 늘어
지구 대기권 밖에도 설치
라이고과학단엔 한국인 14명도
이들은 라이고와 리사 사이
비어있는 주파수 대역에 관심 ‘한국 라이고’ 이형목 교수를 만나다 -라이고 프로젝트의 창립은 1980년대에 이뤄졌다. 실제 관측까지 오래 걸린 것 같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제안이 이뤄졌다.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서 1989년 미국국가과학재단(NSF)이 투자를 승인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등을 검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현재는 미국 내 두 곳뿐이지만, 세계적으로 관측소가 늘고 있다 들었다. “이탈리아 피사의 비르고(Virgo)는 거의 완성 단계다. 1차 설치를 마친 뒤 업그레이드 작업 중이다. 올해 하반기 라이고의 두번째 과학가동(실제 관측)이 시작될 때 동시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과 인도에서도 만들어지는데, 일본의 카그라(KAGRA)는 도야마현 땅속에 짓는다. 터널공사를 끝냈고 진공튜브도 설치했다. 거울도 매달아서 며칠 전 처음 시험가동에 성공했다. 조만간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해 2019년 초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인도는 라이고 인디아(LIGO-India)라 부르는데 미국 라이고와 똑같은 설비다. 그간 정부 결정이 미뤄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실제 검출이 이뤄진 덕에 17일 낮 인도 정부가 최종 결정을 했다. 그 소식이 라이고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목표 연도는 2022년인데, 그때가 되면 전세계에 5개의 검출기가 동시에 가동을 하게 된다.” -지구 대기권 밖에 중력파 측정 장치를 설치하려는 계획도 있던데? “리사(LISA)라는 계획이다. 라이고와는 다른 진동수의 중력파를 찾는 것이다. 라이고가 측정하는 중력파는 진동수가 100에서 수천㎐(헤르츠)인데 리사는 1만분의 1㎐다. 진동이 1만분의 1이면 1만 초 동안 한 번 출렁이는 것이다. 굉장히 느리게 변하는 걸 측정하는 것. 그렇게 하려면 지상에선 불가능하다. 지구 대기권 밖 150만㎞ 떨어진 세 곳에 장비를 띄워놓고 서로 레이저를 쏘아 측정한다. 워낙 기술적으로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계획은 오래전에 시작했지만 현실화하는 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목표 연도가 2037년이다. 다만 리사도 지난해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다. 리사 패스파인더라고 하는 기술검증 위성이 연말께 쏘아올려졌다. 현재 목표 궤도로 이동 중인데, 거기서 기술이 검증되면 계획 추진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리사는 누가 주도하고 있나? “유럽우주기구(ESA)가 주도한다. 원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유럽우주기구와 같이 추진하다가 최근 다른 프로젝트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며 빠졌다. 최근엔 중국이 리사에 관심이 많다. 중국은 참으로 야심찬 나라로, 모든 걸 주도하고 싶어한다. 라이고에 뛰어들긴 너무 늦었다고 판단해 리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리사는 사실 지금 어느 나라든 들어가면 큰일을 할 수 있는 단계다.” -한국의 중력파연구협력단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리사는 목표가 2037년인데, 이는 완전히 세대가 바뀌는 정도의 시기다.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우리는 라이고와 리사 사이 비어 있는 주파수 대역을 보려 한다. 현재로선 아무도 계획이 없는 영역이다. 라이고가 보려는 것은 태양 정도 질량의 별이 죽으면서 만들어낸 블랙홀이다. 리사는 질량이 무거운 거대 블랙홀들을 대상으로 한다. 근데 그 중간 크기의 블랙홀이 있다는 증거가 요즘 서서히 나온다. 아직 아무도 잘 모르는 영역이라 관심이 적다.” -중간 크기의 블랙홀은 어떤 것인가? “태양 질량의 100배에서 1만배에 이르는 크기다. 이런 블랙홀의 중력파를 측정하려면 중간 주파수를 봐야 한다. 이것도 역시 우주에 나가면 유리하지만 워낙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지상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백호정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개발한 ‘소그로’라는 방식인데, 초전도체를 이용한다. 30m×100m 크기의 금속 막대기를 만든 뒤 그 주변을 초전도체로 둘러싼다. 금속과 초전도체의 상대적 위치가 변하면 전류가 흐르는데 그걸 감지하는 것이다. 소그로는 (한 변이 4㎞에 이르는 라이고와 달리) 크기가 작다. 100m 크기의 막대기를 땅속에 수직으로 세워놓기만 하면 된다. 또 라이고와 달리 3차원 구조여서 하나의 측정소만으로 파원의 방향을 추정할 수 있다.” ‘과학 혁명’ 필적할 성과 -이론으로 제안된 지 100년 만에 실제 중력파를 관측했다. 이번 관측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장 가능한 것과 앞으로 가능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일단은 블랙홀의 충돌 현상을 실제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두 개의 블랙홀이 있고, 그 질량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런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이것이 블랙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이벤트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계속 발견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적어도 지금 장비 상태만으로도 일주일에 하나 이상 발견될 만큼 (중력파를 방출하는 천문 현상은) 많다.” -한마디로 블랙홀을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까진 (블랙홀을) 아주 추상적인 정보를 통해 얘기해왔다. 이제 꽤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또 (블랙홀과 더불어 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중성자별의 충돌을 보게 될 텐데, 그게 감마선 폭발체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진 감마선 폭발체가 중성자별 충돌에 의한 것과 다른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 중성자별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들은 백가쟁명식인데, 적어도 몇 가지 이내로 걸러지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우주의 시작 시점의 비밀을 간직한) 배경 중력파를 찾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 보는 건 이곳저곳에서 펑펑 터지는 것들인데, 이런 터짐이 자주 일어나면 일종의 잡음처럼 보인다. 그런 걸 ‘배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여럿이 동시에 떠들면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 소리를 잘 분석하면 개별 사람의 말로 분해하진 못하지만 모인 이들의 성별이나 연령대 등을 알 수 있다. 배경 중력파도 그렇다. 다만 워낙 신호가 약해 현재의 라이고로는 검출이 어렵다. 저주파로 가야 하고 검출기 성능이 좋아져야 한다.” -배경 중력파를 분석한 결과는 언제쯤 나오게 될까? 20~30년쯤 걸리나?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이번 중력파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해봤는데 못 찾았다, 저렇게 해봤는데 못 찾았다는 식의 논문이 계속 나오다 어느 순간 찾았다는 논문이 나온다. 배경 중력파도 어느 한계 내에선 못 찾았다는 식의 논문이 앞으로 주기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럼 그것보다 더 약한 (주파수) 대역에서 찾게 될 것이고 그만큼 장비가 개량될 것이다.” 라이고는 올해 하반기 이탈리아의 비르고와 함께 다시 과학가동을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이번 중력파 검출이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창을 찾은 것이라 말한다. 데이비드 라이치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중력파 검출은 400여년 전 갈릴레오가 작은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시작하면서 과학 혁명이 촉발된 것에 필적하는 성과”라고 했다. 중력파를 통해 인류가 맞닥뜨리게 될 진실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까.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미국 워싱턴주 핸퍼드에 있는 라이고 탐지기.
라이고(LIGO) 제공
몰랐다면 영화속 탐사 불가능
터무니없이 작은 힘이지만
우주 멀리, 시간도 거슬러
13억년 만에 지구에 닿았다 2022년께 검출기 5개로 늘어
지구 대기권 밖에도 설치
라이고과학단엔 한국인 14명도
이들은 라이고와 리사 사이
비어있는 주파수 대역에 관심 ‘한국 라이고’ 이형목 교수를 만나다 -라이고 프로젝트의 창립은 1980년대에 이뤄졌다. 실제 관측까지 오래 걸린 것 같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제안이 이뤄졌다.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서 1989년 미국국가과학재단(NSF)이 투자를 승인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등을 검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현재는 미국 내 두 곳뿐이지만, 세계적으로 관측소가 늘고 있다 들었다. “이탈리아 피사의 비르고(Virgo)는 거의 완성 단계다. 1차 설치를 마친 뒤 업그레이드 작업 중이다. 올해 하반기 라이고의 두번째 과학가동(실제 관측)이 시작될 때 동시 가동할 계획이다. 일본과 인도에서도 만들어지는데, 일본의 카그라(KAGRA)는 도야마현 땅속에 짓는다. 터널공사를 끝냈고 진공튜브도 설치했다. 거울도 매달아서 며칠 전 처음 시험가동에 성공했다. 조만간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해 2019년 초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인도는 라이고 인디아(LIGO-India)라 부르는데 미국 라이고와 똑같은 설비다. 그간 정부 결정이 미뤄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실제 검출이 이뤄진 덕에 17일 낮 인도 정부가 최종 결정을 했다. 그 소식이 라이고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목표 연도는 2022년인데, 그때가 되면 전세계에 5개의 검출기가 동시에 가동을 하게 된다.” -지구 대기권 밖에 중력파 측정 장치를 설치하려는 계획도 있던데? “리사(LISA)라는 계획이다. 라이고와는 다른 진동수의 중력파를 찾는 것이다. 라이고가 측정하는 중력파는 진동수가 100에서 수천㎐(헤르츠)인데 리사는 1만분의 1㎐다. 진동이 1만분의 1이면 1만 초 동안 한 번 출렁이는 것이다. 굉장히 느리게 변하는 걸 측정하는 것. 그렇게 하려면 지상에선 불가능하다. 지구 대기권 밖 150만㎞ 떨어진 세 곳에 장비를 띄워놓고 서로 레이저를 쏘아 측정한다. 워낙 기술적으로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계획은 오래전에 시작했지만 현실화하는 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목표 연도가 2037년이다. 다만 리사도 지난해 중요한 이벤트가 있었다. 리사 패스파인더라고 하는 기술검증 위성이 연말께 쏘아올려졌다. 현재 목표 궤도로 이동 중인데, 거기서 기술이 검증되면 계획 추진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리사는 누가 주도하고 있나? “유럽우주기구(ESA)가 주도한다. 원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유럽우주기구와 같이 추진하다가 최근 다른 프로젝트가 많아 지원이 어렵다며 빠졌다. 최근엔 중국이 리사에 관심이 많다. 중국은 참으로 야심찬 나라로, 모든 걸 주도하고 싶어한다. 라이고에 뛰어들긴 너무 늦었다고 판단해 리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리사는 사실 지금 어느 나라든 들어가면 큰일을 할 수 있는 단계다.” -한국의 중력파연구협력단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리사는 목표가 2037년인데, 이는 완전히 세대가 바뀌는 정도의 시기다.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우리는 라이고와 리사 사이 비어 있는 주파수 대역을 보려 한다. 현재로선 아무도 계획이 없는 영역이다. 라이고가 보려는 것은 태양 정도 질량의 별이 죽으면서 만들어낸 블랙홀이다. 리사는 질량이 무거운 거대 블랙홀들을 대상으로 한다. 근데 그 중간 크기의 블랙홀이 있다는 증거가 요즘 서서히 나온다. 아직 아무도 잘 모르는 영역이라 관심이 적다.” -중간 크기의 블랙홀은 어떤 것인가? “태양 질량의 100배에서 1만배에 이르는 크기다. 이런 블랙홀의 중력파를 측정하려면 중간 주파수를 봐야 한다. 이것도 역시 우주에 나가면 유리하지만 워낙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지상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 중이다. 백호정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개발한 ‘소그로’라는 방식인데, 초전도체를 이용한다. 30m×100m 크기의 금속 막대기를 만든 뒤 그 주변을 초전도체로 둘러싼다. 금속과 초전도체의 상대적 위치가 변하면 전류가 흐르는데 그걸 감지하는 것이다. 소그로는 (한 변이 4㎞에 이르는 라이고와 달리) 크기가 작다. 100m 크기의 막대기를 땅속에 수직으로 세워놓기만 하면 된다. 또 라이고와 달리 3차원 구조여서 하나의 측정소만으로 파원의 방향을 추정할 수 있다.” ‘과학 혁명’ 필적할 성과 -이론으로 제안된 지 100년 만에 실제 중력파를 관측했다. 이번 관측의 의미는 무엇인가? “당장 가능한 것과 앞으로 가능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일단은 블랙홀의 충돌 현상을 실제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두 개의 블랙홀이 있고, 그 질량까지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런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그 어떤 것보다 확실히 이것이 블랙홀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이벤트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계속 발견될 것이라는 데에 있다. 적어도 지금 장비 상태만으로도 일주일에 하나 이상 발견될 만큼 (중력파를 방출하는 천문 현상은) 많다.” -한마디로 블랙홀을 더 잘 알게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까진 (블랙홀을) 아주 추상적인 정보를 통해 얘기해왔다. 이제 꽤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또 (블랙홀과 더불어 별 진화의 마지막 단계인) 중성자별의 충돌을 보게 될 텐데, 그게 감마선 폭발체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진 감마선 폭발체가 중성자별 충돌에 의한 것과 다른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 중성자별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들은 백가쟁명식인데, 적어도 몇 가지 이내로 걸러지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우주의 시작 시점의 비밀을 간직한) 배경 중력파를 찾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 보는 건 이곳저곳에서 펑펑 터지는 것들인데, 이런 터짐이 자주 일어나면 일종의 잡음처럼 보인다. 그런 걸 ‘배경’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여럿이 동시에 떠들면 웅성웅성하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 소리를 잘 분석하면 개별 사람의 말로 분해하진 못하지만 모인 이들의 성별이나 연령대 등을 알 수 있다. 배경 중력파도 그렇다. 다만 워낙 신호가 약해 현재의 라이고로는 검출이 어렵다. 저주파로 가야 하고 검출기 성능이 좋아져야 한다.” -배경 중력파를 분석한 결과는 언제쯤 나오게 될까? 20~30년쯤 걸리나?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이번 중력파 발견도 그랬다. 이렇게 해봤는데 못 찾았다, 저렇게 해봤는데 못 찾았다는 식의 논문이 계속 나오다 어느 순간 찾았다는 논문이 나온다. 배경 중력파도 어느 한계 내에선 못 찾았다는 식의 논문이 앞으로 주기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럼 그것보다 더 약한 (주파수) 대역에서 찾게 될 것이고 그만큼 장비가 개량될 것이다.” 라이고는 올해 하반기 이탈리아의 비르고와 함께 다시 과학가동을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이번 중력파 검출이 인류가 우주를 바라보는 전혀 다른 창을 찾은 것이라 말한다. 데이비드 라이치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중력파 검출은 400여년 전 갈릴레오가 작은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시작하면서 과학 혁명이 촉발된 것에 필적하는 성과”라고 했다. 중력파를 통해 인류가 맞닥뜨리게 될 진실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까.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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