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사는 박테리아를 배양, 증식한 모습. 피부에 사는 피부포도구균은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성분을 분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 제공
표피나 땀샘, 모낭에 사는 수많은 피부 미생물들 중에는 질병을 일으키거나 건강에 안 좋은 미생물들도 있지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미생물들도 있다. 최근에 피부 미생물들 가운데 특정 박테리아가 피부암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교 의대 등의 생화학 연구진은 사람 피부에서 흔히 발견되는 박테리아인 피부포도구균(Staphylococcus epidermidis)이 분비하는 특정 성분(‘6-HAP’로 약칭, 6-N-hydroxyaminopurine)이 피부 암세포의 디엔에이(DNA) 합성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최근 보고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6-HAP를 생산하는 피부포도구균은 많은 건강한 사람들의 피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일부 사람들에서 미생물군이 피부암을 막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이 연구결과는 숙주를 보호하는 피부 공생 박테리아의 새로운 역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람 피부에 흔히 사는 피부포도구균.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성분을 분비하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에 발견된 피부포도구균 균주의 6-HAP 분자 성분은 암세포에서 디엔에이가 합성되는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암세포의 증식과 확산을 막고, 특히 자외선으로 인한 손상 탓에 생길 수 있는 피부암의 발전을 억누르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실험에서 나타났다. 과학매체
<사이언스 뉴스>의 보도를 보면, 연구진은 암세포와 함께 6-HAP 성분을 주입한 실험쥐들에서는 암세포만 주입한 쥐들과 비교해 암세포 발달이 50%가량 억제됐다고 밝혔다. 또 자외선을 석 달 동안 쪼이는 자극을 가했을 때, 6-HAP 성분을 피부에 바른 쥐들에서는 그렇지 않은 쥐들과 비교해 흑색종 발생이 6분의 1 내지 4분의 1로 억제됐다고 연구진은 보고했다.
연구진은 “6-HAP 분자 구조가 디엔에이를 구성하는 염기들 중 하나와 많이 닮아, 이것이 디엔에이 합성 과정을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연구의 계기를 <사이언스 뉴스>에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의 실험에서 6-HAP 분자는 디엔에이의 가닥 구조를 만들 때 꼭 필요한 ‘중합효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관심을 끄는 점은 6-HAP가 암세포에서는 디엔에이 합성을 방해하지만 건강한 정상세포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건강한 세포에선 6-HAP 분자의 기능을 불활성화 하는 효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양세포들에서는 6-HAP를 막을 그런 효소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보도자료에서 “피부 미생물군이 인체 건강에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앞서 발표한 우리의 다른 연구에서도 피부에 사는 일부 미생물 종들이 병원성 박테리아에 맞서 항균성 펩타이드를 분비한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고 전했다. 건강한 생태계 균형을 이루는 피부 미생물군 중에는 일부 유익한 미생물 종들이 인체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와 관련해 연구진은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6-HAP 같은 성분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생성되는지, 암 예방에 이용될 수 있는지 등에 관해서는 후속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