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의학과 서사(45)
김초엽의 ‘인지 공간’,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와 장애의 가치
김초엽의 ‘인지 공간’,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와 장애의 가치
사이보그는 기술과 신체의 계면이자, 장애와 과학이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정면에서 물어본다. 출처: 아이엠디비
장애, 탐구를 촉발하다 김초엽의 단편 ‘인지 공간’ 도입부에서 주인공 제나는 그동안 인지 공간의 관리자로서 살아온 삶을 벗어나려 한다. 주변 사람들은 만류한다. 그는 작은 공동체에 헌신했지만, 이제 “진짜 세계를 직면”하기 위해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고 말한다. 제나가 사는 세상은 우리 세상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인지 공간의 존재와 영향 때문인데, 격자 구조로 이루어진 인지 공간에 사람들은 공동의 지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적 능력을 공유하는 삶을 산다. 이 구조물이 없으면 이 세계의 인간은 동물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 인간은 뇌의 일부를 건물로 짓고 이를 통해 사유하고 지식을 저장하는 셈이다. 작품이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인지 공간에 들어가서 활동하기 위해선 신체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마 격자 구조라는 것이, 그 사이를 돌아다니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근력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형태인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친구 이브는 그런 신체 조건을 갖추지 못한 채 태어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현격히 작고, 그저 넘어진 것만으로도 병실 신세를 져야 하는 이브. 제나는 또래에서 가장 키도, 몸집도 크다는 이유로 이브를 보호하고 이브가 지닌 특별함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엔 명확한 벽이 있다.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 아이들은 인지 공간으로 들어가는데, 이브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제나는 인지 공간에 들어가서 자신의 지적 능력이 엄청나게 넓어진 것에 감탄하지만, 이브는 인지 공간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인지 공간은 그 공간적 제약 때문에 일부 기억을 지워야 하며, 인지 공간이 내보이는 지식은 공동체의 평균인데 그것이 지식의 전체라고 할 수는 없다’라는. 그러나, 인지 공간이 보여주는 확장성에 매료된 상태였던 제나는 이브의 말을 무시한다. 얼마 뒤, 이브가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제나는 이브의 집을 방문하고, 그가 개인용 인지 공간인 스피어를 만들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공동체의 평균인 인지 공간이 진실이 아니라, 각자의 인식과 기억이 더해진 전체가 진실이라는 생각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제나는 이브의 말을 실현하고자 한다. 직접 완성한 스피어와 함께 공동체 밖으로 탐험을 떠남으로써.
김초엽의 ‘인지 공간’이 실린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처: 알라딘
장애, 연립(聯立)하는 영웅이 되다 김초엽과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와 기술의 만남을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살핀다. 그 접점이 인간과 기술이 뒤섞인 사이보그이기에 둘은 자신을 사이보그로 여기며, 자신이 접한 기술을, 그리고 그 기술의 변화를 통한 인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여정 중간에서, 김원영은 청테이프의 역할을 곰곰 생각해 본다. 덕트 테이프. 제2차 세계대전 중 베스타 스타우트라는 여성이 개발한 이 물건은 손쉽게 틈을 막아 안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용도로 탄생했다. 하지만 쓰기 쉽고(섬유를 따라 뜯으면 쉽게 찢어진다) 어디에나 잘 붙으며(게다가 방수다) 튼튼한(처음에는 고무와 실, 이후 폴리프로필렌과 나일론 섬유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테이프는 붙은 다음에는 상당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이 테이프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덕트 테이프는 우주선을 임시 수리하는 데 사용되어, 아폴로 13호와 17호가 덕트 테이프 덕에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이 덕인지, 최근 방영한 드라마 ‘시지프스’에서 주인공도 덕트 테이프로 비행기에 난 구멍을 막아 승객들을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쟁에서도 헬리콥터 등을 긴급 수리하는 데 사용되었고, 치료 물자가 없을 때 붕대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영화 ‘마션’에서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의 화성 생활을 지탱하는 것도 덕트 테이프다. 우리는 덕트 테이프의 친척 격인 청테이프를 일상에서 자주 활용한다. 붙이고 막고 잇는 데 청테이프만큼 자주 쓰이는 물건이 또 있을까. 물론, 청테이프가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우리 삶이 그렇게 완벽을 요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김원영은 이런 청테이프의 역할에 장애인의 삶을 비긴다. 이름하여 ‘장애의 청테이프 존재론’이다.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당사자 두 사람의 관점은 책에서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섞이는데, 그것 자체로 연립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출처: 알라딘
지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믿는다. 우리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러나 그 발전의 방향은 다수에 속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침묵 당했던 목소리들—여성의, 장애인의, 다른 인종과 민족의, 환자의 목소리가 대표적일 것이다—을 듣는 귀가 있어야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장애는 치료해야 하고 극복해야 할 조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장애를 바라보아야 하는 단일의 시각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커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지금을,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그리고, 이토록 명확히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라.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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