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파 전달 속도가 물보다 3배 빠른 구리로 만든 ‘제로 굴절률 메타물질’.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국내 연구진이 전파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전폭기처럼 물속에서 음파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잠수함을 만들 수 있는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과 광주과학기술원(GIST) 공동연구팀은 20일 “수중에서 음파를 반사시키지 않고 들어온 그대로 투과시키는 물질을 개발했다. 마치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 수중 스텔스의 핵심기술로 적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표준연 안전측정센터 최원재 책임연구원과 지스트 기계공학부 왕세명 교수팀이 연구한 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근호에 실렸다.
메타물질은 자연계에 없는 특성을 지닌 물질을 통칭한다. 대표적인 메타물질 기술이 투명망토이다. 원래 플러스(양) 방향으로 굴절되는 빛을 제어해 마이너스(음)나 제로 굴절률까지 구현하면 마치 물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메타물질은 음파의 굴절률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물속에서는 전자파나 레이더 신호가 닿지 않아 음파로 물체를 탐지한다. 영화에서 물속 잠수함을 탐지하거나 잠수함에서 상대 함정과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레이더 대신 소나(SONA) 등 음파탐지기를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이유다.
대기 중 메타물질 곧 투명망토같은 기술은 일찌감치 구현됐지만 수중 음향의 제로 굴절률은 그동안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의 실험으로만 보고돼왔다. 이유는 수중에 있는 물질이 물보다 음향의 전달속도가 느려야만 굴절률 제어가 가능하다는 가설 때문이었다. 이 가설 대로 메타물질을 만들려면 공기처럼 물보다 밀도가 낮아 소리 전달 속도가 느린 물질을 물속에 배치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연구팀은 ‘느린 물질 가설’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을 해 물보다 음파 전달 속도가 세 배 이상 빠른 구리를 규칙적으로 배치해 제로 굴절률의 ‘음향양자결정’(포논 결정)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에 음파가 닿으면 물질 끝단에서 물질을 통과하기 직전과 똑같은 위상을 지닌 파동이 나온다. 누군가 이 물질에 음파를 쏘아 측정한다면 음파가 끊기거나 왜곡되지 않고 마치 아무 물질을 만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한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최원재 책임연구원(왼쪽) 연구팀이 제로 굴절률 메타물질을 이용해 수중실험을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또 메타물질 끝단의 형태를 변형하면 음파를 모을 수도, 퍼져 나가게 제어할 수 있다. 건축물이나 기계장치에서 메타물질을 이용해 진동이나 소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우회시키는 등 층간소음이나 기계소음 문제 해결용 기술로도 적용 가능하다.
연구팀은 “제로 굴절률 메타물질은 음파를 투과시킬 뿐만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할 수 있어 군사·기계·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