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에 비상이 걸렸다. 그만큼 대기가 건조하기 때문이지만, 이맘때면 꼭 무슨 연례행사 치르듯 지나가는 ‘불의 재난’이 안타깝기도 하다. 겨우내 눈으로 덮여 있었던 산을 바싹 마르게 하는 주범은 바로 중국에서 다가오는 건조한 대륙고기압. 이로 인해 비 오는 날이 적어지면서 대기가 온통 건조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금세 큰불로 번지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지난 30일에는 전남 강진군 옴천면 뒷산에 큰 불이 나는 등 올 들어 128건이나 되고, 이는 지난해의 5배나 된다. 피해 면적도 93.4ha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15배 정도가 넘어 2000년 이래 평균치의 2배에 가깝다. 이는 최근에 등산객이 부쩍 늘어남에 따라 부주의에 의한 직접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지난 1~2월의 강수량이 최근 몇 년 동안의 같은 기간에 내린 평균 강수량의 40% 수준에 그치고, 건조일수도 2배 가까이 증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화재 현황을 보면, 매년 약 3만 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한다. 이 가운데 500명 이상이 화재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화재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후와 연관지어 생각할 때도 화재는 심각한 원인을 제공한다. 대형 산불 등으로 인해 황폐해진 삼림은 여름철 집중호우 때 산사태를 막아내지 못한다. 실제로 태풍 ‘루사’가 내습했을 때영동 지방에서 그 피해가 더욱 컸던 것은 강원도 고성, 삼척, 등지에서 일어난 산불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다. 산불로 인해 벌거벗은 산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을 흡수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산간 계곡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이 급류에 나뭇가지나 크고 작은 바윗덩이가 함께 휩쓸려 내려오면서 하천의 교각을 막는 등 물의 흐름을 바꾸어 더 큰 피해를 유발시켰던 것이다.
또한 인도·말레이시아·중국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과 아시아 지역의 목재나 가축 배설물을 이용한 난방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구름층은 햇빛을 차단하여 대기의 공기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든다. 이는 다시 고온·가뭄·홍수 등과 같은 기상 이변의 원인이 된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베이징(北京)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반대편의 미국뉴욕에서는 폭풍이 몰아친다는 카오스 이론의 ‘나비효과’와도같이 기상의 변화는 작은 변수에도 매우 민감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도 지구촌의 기상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근래의 기상 변화는 단순히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 즉 도시와 그 주변의 난(亂)개발, 삼림 파괴 등에 의해 일어난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무릇 모든 일은 기본에 충실할 때 가장 최대의 효과를 기대할 수있는 법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화마(火魔)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그만큼 국민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불과 관련한 최소한의 부주의만이라도 줄이도록 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교과서적인 얘기가 아니다. 불조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우리 생활의 슬로건이기 때문이다.
올 봄에도 기압계의 흐름으로 보아 대기가 건조한 날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에서 발령하는 건조특보, 산불확률예보, 소방방재청에서 제공하는 재난종합상황정보는 화재 예방을 위한 국민의 ‘생활정보’다. ‘정보’는 힘이다. 이제 이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우리의 귀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정보화시대의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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