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지정?…보존책 고민 되네
세계적 희귀식물인 미선나무의 대규모 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추가 천연기념물 지정은 하지 않을 방침이어서 보존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2일 충북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의 농경지와 인접한 야산에서 동북아식물연구소(소장 현진오)와 한국교사식물연구회(회장 권희정) 조사단은 탐스럽게 꽃을 피운 미선나무의 큰 군락을 확인했다. 가파른 야산 중턱에 키 1~2m의 미선나무들이 헤치고 나가기 힘들 만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흰색 또는 분홍색 꽃을 단 새 가지와 둥근 열매를 매단 지난해 가지들이 섞여 있다. 이런 떼판을 산비탈 약 1㎞ 범위에서 5~6군데 발견했다.
이 자생지를 처음 발견한 현진오 박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다른 지역의 미선나무 자생지보다 규모가 크고 세력도 왕성해 학술적 보호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선나무가 최초로 학계에 보고된 곳과 인접한 장소에서 자생지가 발견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은 1919년 초평면 용정리에서 미선나무를 처음으로 발견해 학계에 보고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자생지에서 약 2㎞ 떨어진 곳이다. 최초 발견지는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으나 사람들이 꺾어가고 캐어가는 바람에 완전히 훼손돼 1969년 해제됐다. 현재 이곳엔 다른 지역 미선나무를 증식해 심어놓았다. 따라서 새로 발견된 미선나무 자생지는 처음 발견된 미선나무 원종과 가장 유사해 이 종의 생물학적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충북 영동군 영동읍 설계리 야산에서도 규모가 큰 미선나무 자생지가 지난해 발견됐다. 김주환 대전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돌이 많은 야산의 급경사지에 500그루 이상이 분포하는 것을 확인해 현재 관련 논문을 작성 중”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미선나무도 관목층 가운데 우점종일 만큼 건강한 상태라고 김 교수는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자생지는 충북 괴산의 송덕리·추점리·율지리 등 3곳, 영동읍 매천리와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청림리 등에 각각 1곳 등 모두 5곳이다. 그러나 충북 송덕리·율지리의 자생지는 용정리처럼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발견된 곳에서 완전히 사라져 다른 곳의 미선나무를 옮겨와 복원시킨 것이다. 또 부안의 자생지도 용담댐 건설로 상당부분 수몰돼 옮겨온 것들과 함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안내판을 세우고 울타리로 둘러쳤을 뿐 관리 소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생지의 대부분에서 생육상태가 좋지 않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이근영씨는 “새로운 자생지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기존 지정지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추가 지정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5년 뒤 모든 자생지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괴산의 3개 천연기념물에 대해서는 해제하자는 검토의견도 있었다고 이씨는 밝혔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천연기념물 지정을 선뜻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김주환 교수는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은 채 외부로 알려져 벌채꾼의 손을 타는 것보다는 그대로 놓아두는 쪽이 낫다”면서도, “사유지 개발이나 산불 가능성을 생각하면 지정이 나을 것도 같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현진오 박사는 “환경부나 산림청의 보호구역 지정을 고려해 볼 만하다”며 “보호구역이나 천연기념물 지정이 지역주민에게 피해가 아닌 득이 될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보전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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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먼 친척뻘…선녀 부채와 비슷한데서 이름 유래
미선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식물이다. 물푸레나무과에 포함되는 미선나무속에는 세계적으로 미선나무 하나밖에 없다. 개나리, 수수꽃다리, 쥐똥나무는 먼 친척뻘이다.
이런 희귀성 때문에 발견된 자생지가 잇따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불법 채취 등 손을 타기도 했다. 충북 괴산에서 복원사업이 벌어졌고, 최근엔 원예종으로 증식돼 공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1920년대부터 일본에 의해 소개돼 관상수로 개발됐다. 언뜻 개나리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흰색의 꽃이 앙증맞고 향기가 난다. 또 옅은 분홍색(사진)이나 상아색을 띤 품종도 있어 은근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미선나무란 이름은 열매 모양이 전래동화 속 선녀들이 지닌 둥근부채(미선)와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개나리보다 열흘쯤 이른 3월부터 꽃을 피운다.
충북 진천·괴산·영동과 전북 부안의 산기슭과 석회암 돌무더기 지대에서 자란다.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을 피해 척박한 돌밭에서만 산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조선육도목’이란 별칭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엔 전국에 분포했으리란 추정도 있다. 꺾꽂이, 포기나누기, 종자 파종 등의 방법으로 쉽게 번식된다. 종 자체는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지정된 법정 보호종이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