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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현장리포트] 한강 하구엔 초록보석이 있다/ 조홍섭

등록 2006-04-16 13:59수정 2006-04-16 14:59

장항습지 전경. 환경부 제공.
장항습지 전경. 환경부 제공.
장항습지 보호지역 지정…북잠수정 방지 ‘철책’덕에 생태 완벽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부터 김포대교까지 자유로를 따라오면서 한강쪽을 바라보면, 철책선 넘어 연초록빛 버드나무 숲과 갯벌이 강변에 기다랗게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구둑으로 막히지 않은 마지막 강하구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이곳을 포함한 한강하구 일대가 국내 최대의 내륙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다.

지난 13일 새 습지보호지역의 최상류에 위치한 경기도 고양시 장항습지를 찾았다.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군부대의 철조망을 넘는 순간 딴 세상이 펼쳐졌다. 자유로와 일산·김포의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이렇게 훌륭한 자연이 살아있는 게 놀라왔다. 도로변의 논·밭을 지나자 신록으로 물든 버드나무들의 빽빽한 숲이 강변에 띠를 이뤘다. 그 너머엔 갈대밭과 갯벌이 한강까지 이어졌다. 갯벌과 갯고랑엔 고라니와 기러기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재두루미의 굵은 배설물도 눈에 띄었다. 시베리아로 북상하는 마지막 겨울철새인 쇠기러기 한떼가 일행의 발소리에 놀라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다.

장항습지 전경.
장항습지 전경.
빽빽한 숲속엔 재두루미, 고라니, 기러니, 쇠기러기, 왜가리

장항습지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철책선 덕분이다. 북한의 간첩을 태운 반잠수정이 한강 하구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무장지대처럼 한강 하구에는 높은 철책선이 쳐 있다. 초소가 군데군데 서 있고 철조망 가운데 침투 여부를 알 수 있도록 흰색 페인트를 칠한 돌을 끼워놓은 모습이 그렇다. 물론 이곳에도 농경지는 많다. 허가받은 농민들만 이곳을 드나들 수 있을 뿐이다.

장항습지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싱그러운 버드나무 숲이었다. 여기보다 하류인 산남습지와 시암리습지의 주 식생인 갈대인 것과 대조적이다. 어린 버드나무들이 갓 돋은 연두색 잎을 매달고 길이 7.6㎞인 습지에 밀생해 있다. 버드나무 숲에서 강쪽으로 나아가면 갯벌이 나타난다. 기러기나 왜가리 등 새들의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겨울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를 벌였을 때 고라니 37마리를 목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대낮에도 고라니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강을 따라 띠 모양으로 이어진 갯벌과 버드나무숲을 수직으로 갯고랑이 관통한다. 밀물 때 바닷물이 치고 올라오는 통로이다. 이곳으로 갯지렁이나 게 등이 강변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이들은 새들의 귀중한 먹이가 된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창회 박사는 “농경지, 숲, 갯벌, 민물, 바닷물 등이 한 자리에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환경을 조성해 생물다양성이 높다”며 “우리나라에서 이보다 좋은 습지는 찾기 힘들다”고 힘주어 말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04년 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는 저어새·매·흰꼬리수리·검독수리 등 1급 멸종위기종 4종과 재두루미·개리·큰기러기·금개구리·삵·매화마름 등 2급 멸종위기종 22종 등 많은 희귀 동·식물이 분포한다.

장항습지에서는 재두루미 배설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장항습지에서는 재두루미 배설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군사보호구역 덕에 멸종위기 26종 희귀 동식물 보고
농경지, 숲, 갯벌, 민물, 바닷물 어우러져 생물다양성 더 높아


한강은 우리나라에 하구가 댐으로 막히지 않은 마지막 큰 강이다. 진작부터 한강 하구를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보호구역 지정에는 수많은 난관이 놓여 있다. 우선 안보에 민감한 이 지역을 관할하는 국방부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국방부는 철조망을 제거해 지역개발을 활성화시켜 달라는 지자체의 압력도 받고 있다. 김포시 등 한강에 인접한 지역은 그 동안 군사보호구역 등으로 지정돼 개발에 뒤처진 피해를 입어 왔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건축물의 신·증축과 토지형질변경 등이 금지된다. 따라서 새로운 보호지역 지정에 맹렬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환경부는 난항을 겪던 국방부, 지자체 등과의 협의를 마치고 16일 김포대교 남단 신곡수중보에서 경기도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 사이 한강하구 60㎢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제까지 환경부가 내륙에 지정한 습지보호지역은 10곳으로 46㎢이니, 한강하구는 다른 모든 내륙 습지보호구역을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환경부는 이 지정을 위해 관계부처와 지자체, 주민들과 어려운 협의를 했다. 그러나 협의과정에서 애초 보호지역에 포함시키려던 약 13㎢는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보호지역에서 장항습지·산남습지·시암리습지·유도를 빼면 97%가 수역이라는 사실은 보호지역 지정에 지자체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반발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장항습지 전경.
장항습지 전경.
한강, 하구가 댐으로 막히지 않은 마지막 큰 강

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을 보면 특이하게도 신곡수중보에서 신남습지 건너편의 김포시 봉성산에 이르기까지는 김포쪽 강변과 강이 보전지역에서 제외돼 있다. 이번 지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곳이다. 김포시의 반발로 보호지역에서 제외된 곳은 바로 재두루미나 큰기러기가 먹이를 찾는 홍도평야 일대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번 지정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이런 핵심적인 지역이 빠진 데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홍도평야의 농경지에서 낙곡 등을 먹은 재두루미나 큰기러기들은 강을 건너와 조용한 장항습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박평수 고양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철새들의 침실만 보전하고 식탁은 빼놓은 셈”이라고 비판했다. 윤순영 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철새들이 먹이를 먹는 곳과 휴식을 취하는 곳을 분리해서는 곤란하다”며 “앞으로 이 지역을 추가로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도평야에는 80년대까지 해마다 2천여마리의 재두루미가 찾아왔다. 전세계에 7천여마리밖에 없는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03호로 지정된 희귀조류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재두루미는 92년 7마리가 홍도평야에서 발견된 이래 올 겨울에는 80여마리가 출현하는 등 최근 회복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서식지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홍도평야를 가로지르는 외곽 순환도로가 건설중이고 김포 신도시도 들어설 예정이다. 습지보전지역에서의 누락은 홍도평야 보전에 좋지 않은 신호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임채환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반대가 워낙 심했다”며 “홍도평야에서 추수한 수확물을 철새에 제공하는 대신 수입을 보상받는 생물다양성 관리협약을 체결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갯벌에서는 기러기나 왜가리 등 새들의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이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다.
갯벌에서는 기러기나 왜가리 등 새들의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이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다.
환경부는 애초 예정한 지역을 모두 보전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지정을 계기로 한강 하구에 대한 본격적인 보전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오는 6월 한강 하구에 대한 정밀 생태조사를 벌인다. 우리가 몰랐던 한강 하구의 생태가치가 잇따라 밝혀질 것이다. 이는 이 지역에 대한 보전을 강화하라는 여론을 일으킬 것으로 환경부는 기대한다. 아울러 한강 하구의 일부를 람사습지로 지정해 국제적인 관심지역으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비무장지대와 연계해 한강하구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도록 추진할 방침이다. 동시에 수도권에 인접한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서 생태관광 명소로 발전시켜 나갈 복안도 밝혔다.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군인들의 안내로 철책선을 빠져나오자 자유로의 자동차 소음이 맞이했다. 강 양쪽에 숲처럼 서있는 일산 신도시와 김포시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장항 습지의 버드나무숲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고양/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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