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폭군’ 외래 물고기
위 갈라보니 절반 굶주려
위 갈라보니 절반 굶주려
‘호수의 폭군’으로 알려진 외래어종 배스가 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리는 등 국내 생태계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국립수산과학원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자들이 2003~2005년 배스를 30여년 전 처음 방류한 강원도 철원군 토교지와 팔당호에서 배스의 식성을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민통선 안에 있는 토교지에서 지난해 5월 내수면생태연구소 연구자는 루어낚시로 잡은 배스의 위 내용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길이 40㎝의 대형 물고기 위 안에 고작 다슬기와 수서곤충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다른 배스들이 먹은 것도 보잘것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크기의 배스에선 벌 한 마리가 나왔고, 49㎝ 길이의 대형배스는 다른 외래어종인 블루길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채집한 91마리 가운데 절반 가까운 45마리는 공복 상태였다. 이 기간에 팔당호에서 채집한 배스 389마리 가운데 47.8%인 186마리도 위가 비어 있었다.
그 동안 배스는 토종물고기의 씨를 말린다는 혐의를 뒤집어썼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달랐다. 토교지에서 배스의 가장 중요한 먹이는 잠자리 애벌레 등 수서곤충이 40%를 차지했고 다슬기 등 연체동물이 23.8%, 물고기는 17.5%에 그쳤다. 팔당호에서 어류는 36.9%로 먹이 가운데 가장 많았지만 수서곤충·육상곤충·연체동물·새우류 등 다른 먹이를 합치면 절반이 넘었다.
연구책임자인 내수면생태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식성조사 결과에 대해 “배스가 무법자처럼 수중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통념과는 달리 힘겹게 환경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장기적으로 숫자가 줄어들어 생태계 일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팔당 쪽 조사를 담당한 한강물환경연구소 변명섭 박사는 “경안천 쪽에는 가시납지리와 몰개의 치어가 풍부해 배스를 잡았을 때는 이미 다 소화됐을 수도 있다”면서도 “팔당호의 먹이구조가 건강한 편이 아니어서 굶주렸을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배스보다는 최근 인공호수 대부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형 토종 육식어종인 강준치가 오히려 생태계에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팔당호에는 2004년 조사에서 강준치가 29%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현재도 증가 추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