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단풍도 본디 태깔을 잃어버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먹을 물마저 모자라 비상급수를 받고 있으며, 모기·해충 따위가 기승을 부려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두달째 가뭄=기상청은 13일 “8월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평년 대비 강수량이 약 50% 이내, 9월부터 현재까지는 약 30% 이하로 전국적으로 강수량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특히 서울·경기, 강원 영서 및 충청지방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평년값에 크게 못미쳤다”고 말했다.
강수량 예년 절반 못미쳐 내주 후반께나 비 내릴듯
가을 가뭄이 지속되는 이유는 보통 비를 동반하는 저기압이 우리나라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압의 통로가 되는 상층 강풍대가 우리나라 북쪽과 남쪽에 각각 치우쳐 놓여, 저기압도 우리나라를 비켜갔다. 많은 비를 몰고 오는 태풍은 남쪽 강풍대를 따라 주로 일본 남쪽 해상에서 방향을 틀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지난주와 이번주 초까지 기온이 평년보다 7~8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것도 이러한 기압배치로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지 못해서였다.
기상청은 다음주 후반부터 북쪽에 자리잡은 강풍대가 점점 남하하면서 찬 공기가 우리나라 쪽으로 내려오면 비가 내릴 가능성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하수도 말라버려=충북 제천시 수산면 율지리와 청풍면 연론리 20여가구 40여명의 주민들은 식수원이던 마을 계곡물이 말라 열흘 넘게 소방차 급수로 밥을 지어 먹고 있다.
농민들 가을농사 망쳐 울상 일부 지역 소방차로 급수
아직도 낮엔 여름 날씨라 밭일로 비지땀을 흘리지만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 장용식(64) 이장은 “세차례나 지하수를 파봤지만 물길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홍천군 상오안리 농공단지 마을 등도 한달 넘게 소방서에서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전남지역 콩 재배 농민들은 가뭄으로 열매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수확량이 지난해 절반에 불과하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김장용 배추는 가물에 기온조차 여느 해보다 높아 뿌리가 썩어가는 무사마귀병(일명 뿌리혹병)이 번지고 있다. 해남군 화원면에서 2만여평의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서정원(46)씨는 “배추 속이 한창 차야 할 때인데, 지난해보다 70%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다”고 한숨지었다.
강원도 특산품인 양양송이 채취량도 뚝 떨어졌다. 양양산림조합이 12일까지 수매한 송이는 3700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270㎏의 59%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았던 제주지역도 이달 들어서는 비가 안 와 당근 재배 지역에서 잎마름 현상과 함께 총채벌레가 기승을 부려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미처 물들지도 못하고…심한 가을가뭄 때문에 13일 경기도 수원 광교산 자락의 단풍나무 잎들이 많이 말라 있다. 수원/연합뉴스
빛바랜 단풍에다 모기는 기승=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커 어느 해보다 영롱한 단풍을 보리라던 기대가 가뭄이라는 복병을 만나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달 중순 대청봉에서 시작된 설악산 단풍은 해발 700m까지 내려왔지만 나뭇잎이 말라 부스러지고 검은 반점이 생기는 등 제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경기 수원 광교산과 충북 속리산 등 전국 유명산과 도심 근교산들도 마찬가지여서 등산객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성주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 박사는 “가을은 나무가 생리적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단계인데 예년에 비해 높은 기온 때문에 온도 스트레스를 받은데다 가뭄으로 수분 스트레스까지 받아 올해 단풍이 여느 해보다 곱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양송이 채취량이 ‘뚝’ 이상고온에 모기 극성
가뭄에 이상고온 현상이 겹치면서 모기가 극성을 부려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울산시 남구 옥동에 사는 유아무개(55)씨는 “여름에 폭우로 모기가 많이 줄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뒤늦게 모기가 기승을 부려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장롱에 넣어두었던 모기장을 다시 꺼냈다”고 했다.
김일주 기자, 춘천 청주 울산 광주 제주/김종화 오윤주 김광수 정대하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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