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에 뿌려진 볍씨를 주워 먹기 위해 몰려든 흑꼬리도요.
흑꼬리도요는 몸길이 38센티미터 정도로 살색의 부리가 길고 직선이며, 부리 끝은 검다. 날 때는 흰색의 날개선과 허리가 뚜렷이 보인다. 흑꼬리도요라는 이름도 날 때 보이는 검은색의 꼬리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도요와 마찬가지 흑꼬리도요도 매년 번식지에서 월동지로 수백에서 수천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2003년 봄 서산간척지. 먼 거리를 날아온 흑꼬리도요들이 지친 날개를 쉬고, 곧 떠날 먼 거리 여행에 필요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대부분의 도요물떼새들이 간척지 주변의 갯벌에 내려 앉아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가까이 볼 수 없지만, 이 녀석들은 간척지 안에 있는 논을 좋아했다. 당시 드넓은 서산은 일일이 모내기를 하지 못하고, 비행기를 이용해 논에 볍씨를 직접 뿌렸는데, 흑꼬리도요들이 논에 뿌린 알곡을 좋아했다. 현대 직원들은 논에 뿌린 볍씨를 물어가는 이 녀석들을 쫒아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이미 주변 논에 자신들이 일용할 양식이 널린 줄 안 이상 절대 멀리 날아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서산 간척지에 가장 잘 적응한 새”라는 평가를 받은 이 녀석들이 다시 서산을 찾지 않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수백에서 수천씩 무리를 지어 여기 저기 볍씨가 가득한 논을 기웃거리는 이 녀석들과 볍씨를 뿌린 사람들과의 갈등이 현대가 2000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전체 논의 70퍼센트 가량을 일반인에 잘게 나눠 분양하면서 저절로 해결되었다. 먹이가 없고,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어 훼방을 노는 지역은 더 이상 먼 여행에 지친 도요의 휴식처가 될 수 없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놀라운 공법으로 매립했다고 자랑하던 서산 간척지는 매립 이전부터 새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논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었고, 대규모의 가창오리 무리와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뜸부기 등 다른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새들이 관찰되면서 세간에 알려진 것 이었다. 갯벌을 매립한 간척이 더 많은 새들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좀더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종류의 새들이 사람들의 눈에 더 많이 보였을 뿐이다. 게다가 서산간척지가 논으로서 제 역할을 위해 한창 벼농사 테스트를 할 무렵엔 유명한 철새 도래지 금강과 낙동강의 강변이 무분별한 개발로 수많은 새들이 갈 곳을 잃고 있던 상태였다.

이제 서산은 한때 전성기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새들만이 황량한 벌판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니 뭐니 하면서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는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애써 뿌린 볍씨를 주워 먹는 흑꼬리도요가 하는 행동이 얄미운 면도 있지만, 더 이상 새들이 찾지 않는 서산 간척지는 아쉬울 뿐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