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도 도표
차용진 강남대 교수 논문
일반인, ‘비자발적·파국적’ 위험 더 심각하게 인식
핵·유전자변형식품등 정보 충분히 줘 갈등 줄여야 흡연보다 에이즈나 조류인플루엔자가 더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갸우뚱할지 몰라도 일반인들은 그렇게 느낀다. 방사선 처리를 한 가공식품은 오토바이나 권총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다. 전문가들과, 이들의 평가에 기대는 정책결정자들은 일반인의 위험인식을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두려움에 기초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위험인식이 싹튼 사회적·문화적 요인에 눈감아서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전자조작식품, 광우병 등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사회학계는 물론 환경정책당국자들 사이에서는 환경오염과 파괴 못지않게 일반시민이 환경당국의 발표에 불안과 불신을 품지 않도록 하는 위험커뮤티케이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용진 강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학국정책학회보에 실린 논문 ‘위험인식과 위험분석의 정책적 함의’에서 일반 시민들의 위험인식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해 6~8월 수도권 주민 2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심리측정모형을 이용해 분석했다. 이 방식은 위험을 사망률 등 평면적으로 측정하는 기존의 공학적 접근과 달리 개인마다 다르게 인식하는 실체로 보고 여러 측면에서 이를 측정한다. 차 교수가 제시한 70가지 종류의 위험 가운데 응답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것들은 전쟁, 핵무기, 원자로 사고, 자동차 사고, 에이즈, 핵물질 수송 등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들에는 태양전력, 자전거, 체조용 뜀틀기, 수력발전, 백신, 스키 등이 있다.?<표 참조>
각각의 위험인식은 다시 낯선가 친숙한가, 알려져 있는 위험인가, 자발적인가, 통제가 가능한가, 두려운가, 일상적인가 재난적인가 등 특성별로 분석됐다. 그 결과를 ‘통제가 어려운 정도’와 ‘알려지지 않은 정도’의 두 요인으로 묶어 정량화한 것이 ?<그림>이다. 여기서 일반인들은 비자발적이고 새로우며 파국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는 위험을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암센터는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를 연간 4만9천명으로 추산한다. 그런데도 지난해 사망자 109명인 에이즈나 사망자가 없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 방사선가공식품, 지구온난화 등을 위험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흡연·음주·스키 등은 실질 위험이 높은데도 잘 알려져 있고 통제가 쉬운 위험으로 인식했다. 차 교수는 특히 그림의 오른쪽 위에 위치한 위험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핵물질 수송, 원자력발전소, 유전자변형식품, 엘엔지 수송, 수돗물 불소첨가, 전기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비자발성, 두려움, 재난성의 강도도 높다. 차 교수는 “위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시민들은 그 위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엄격한 통제를 요구하게 된다”며 “특히 당국의 위험평가와 관리를 신뢰하지 못할 때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의 평가와 통제에 참여하도록 하는 위험정보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전문가들 “무조건 안전”…되레 신뢰 떨어뜨려
“일반인 견해 인정하고 쌍방향 정보 전달해야” 위험인식은 최근 사회과학의 중요한 연구주제가 됐다. 특히 ‘대중의 과학이해’(PUS) 연구자들은 과학과 전문가 지식이 옳고 일반인은 이를 따라야 한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일반인들이 과학을 불신하는 데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사회학회지 <에코>에 실린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 ‘위험인식의 다면성과 위험갈등’을 통해 전문가와 일반인의 위험인식 차이의 원인과 극복 대책을 알아본다. ■ 원인=시민들이 과학을 불신하고 저항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체르노빌 사고와 광우병처럼 전문가의 예측이 실패하는 사례를 시민들이 목격하고 있다. 또 수돗물 바이러스, 환경호르몬, 유전자변형식품 논쟁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사안도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과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이해관계가 반영된다고 시민들은 믿는다. 결국 시민들의 위험 판단은 위험 자체보다도 관련 전문가나 기관을 믿을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 일반시민들은 생활의 경험에서 얻은 특수한 지역에 대한 ‘국지 지식’을 갖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주장과 상충될 때 과학적 주장을 불신하게 된다. 동강댐 논란 때 동굴이 많은 특수한 지질구조를 아는 주민들이 전문가들과 달리 누수 가능성을 주장한 것은 이런 예이다. ■ 대책=위험에 관한 기술적인 정보만으론 위험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위험인지,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떤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누가 위험의 평가와 통제를 담당하며 그들이 공평무사한 집단인지, 위험과 편익이 일부 집단에 불공평하게 집중되는지 등의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전문지식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과학적 지식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위험에 관한 불확실한 지식을 과대포장해 안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일반시민의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위험정보 소통체계는 일반시민들의 우려와 견해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전문가와 일반인이 쌍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핵·유전자변형식품등 정보 충분히 줘 갈등 줄여야 흡연보다 에이즈나 조류인플루엔자가 더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갸우뚱할지 몰라도 일반인들은 그렇게 느낀다. 방사선 처리를 한 가공식품은 오토바이나 권총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는 게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다. 전문가들과, 이들의 평가에 기대는 정책결정자들은 일반인의 위험인식을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두려움에 기초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위험인식이 싹튼 사회적·문화적 요인에 눈감아서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전자조작식품, 광우병 등 사회적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사회학계는 물론 환경정책당국자들 사이에서는 환경오염과 파괴 못지않게 일반시민이 환경당국의 발표에 불안과 불신을 품지 않도록 하는 위험커뮤티케이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차용진 강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학국정책학회보에 실린 논문 ‘위험인식과 위험분석의 정책적 함의’에서 일반 시민들의 위험인식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지난해 6~8월 수도권 주민 22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심리측정모형을 이용해 분석했다. 이 방식은 위험을 사망률 등 평면적으로 측정하는 기존의 공학적 접근과 달리 개인마다 다르게 인식하는 실체로 보고 여러 측면에서 이를 측정한다. 차 교수가 제시한 70가지 종류의 위험 가운데 응답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낀 것들은 전쟁, 핵무기, 원자로 사고, 자동차 사고, 에이즈, 핵물질 수송 등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들에는 태양전력, 자전거, 체조용 뜀틀기, 수력발전, 백신, 스키 등이 있다.?<표 참조>
각각의 위험인식은 다시 낯선가 친숙한가, 알려져 있는 위험인가, 자발적인가, 통제가 가능한가, 두려운가, 일상적인가 재난적인가 등 특성별로 분석됐다. 그 결과를 ‘통제가 어려운 정도’와 ‘알려지지 않은 정도’의 두 요인으로 묶어 정량화한 것이 ?<그림>이다. 여기서 일반인들은 비자발적이고 새로우며 파국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는 위험을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암센터는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를 연간 4만9천명으로 추산한다. 그런데도 지난해 사망자 109명인 에이즈나 사망자가 없는 조류인플루엔자를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 방사선가공식품, 지구온난화 등을 위험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흡연·음주·스키 등은 실질 위험이 높은데도 잘 알려져 있고 통제가 쉬운 위험으로 인식했다. 차 교수는 특히 그림의 오른쪽 위에 위치한 위험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핵물질 수송, 원자력발전소, 유전자변형식품, 엘엔지 수송, 수돗물 불소첨가, 전기장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관련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비자발성, 두려움, 재난성의 강도도 높다. 차 교수는 “위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시민들은 그 위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엄격한 통제를 요구하게 된다”며 “특히 당국의 위험평가와 관리를 신뢰하지 못할 때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위험의 평가와 통제에 참여하도록 하는 위험정보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전문가들 “무조건 안전”…되레 신뢰 떨어뜨려
“일반인 견해 인정하고 쌍방향 정보 전달해야” 위험인식은 최근 사회과학의 중요한 연구주제가 됐다. 특히 ‘대중의 과학이해’(PUS) 연구자들은 과학과 전문가 지식이 옳고 일반인은 이를 따라야 한다는 통념을 비판한다. 일반인들이 과학을 불신하는 데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환경사회학회지 <에코>에 실린 박희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 ‘위험인식의 다면성과 위험갈등’을 통해 전문가와 일반인의 위험인식 차이의 원인과 극복 대책을 알아본다. ■ 원인=시민들이 과학을 불신하고 저항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체르노빌 사고와 광우병처럼 전문가의 예측이 실패하는 사례를 시민들이 목격하고 있다. 또 수돗물 바이러스, 환경호르몬, 유전자변형식품 논쟁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사안도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과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이해관계가 반영된다고 시민들은 믿는다. 결국 시민들의 위험 판단은 위험 자체보다도 관련 전문가나 기관을 믿을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 일반시민들은 생활의 경험에서 얻은 특수한 지역에 대한 ‘국지 지식’을 갖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주장과 상충될 때 과학적 주장을 불신하게 된다. 동강댐 논란 때 동굴이 많은 특수한 지질구조를 아는 주민들이 전문가들과 달리 누수 가능성을 주장한 것은 이런 예이다. ■ 대책=위험에 관한 기술적인 정보만으론 위험소통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면 피할 수 있는 위험인지,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떤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누가 위험의 평가와 통제를 담당하며 그들이 공평무사한 집단인지, 위험과 편익이 일부 집단에 불공평하게 집중되는지 등의 정보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전문지식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과학적 지식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위험에 관한 불확실한 지식을 과대포장해 안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일반시민의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위험정보 소통체계는 일반시민들의 우려와 견해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전문가와 일반인이 쌍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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