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블로그] 전망없는 남향집, 전망있는 북향집

등록 2007-08-13 19:27

서울에서 30년을 사는 동안 거의 못 느꼈던 건데, 이제 15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다시 서울을 방문하여 몇 주 머물면서 느끼는 게 참 많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 풍경이 바뀌어 온 서울이지만, 참으로 희한하리만치 바뀌지 않은 것들도 제법 있더군요. 오늘은 그 중 하나, 즉 한강의 남쪽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 대하여 좀 주절거릴까 합니다.

이제 서울에 머문 지도 7주가 지나다보니 그동안 강변북로를 서너 번, 강변남로를 두어 번 달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안을 따라 포열해 있는 아파트들이 너무 대조적이더군요. 강변북로 쪽 아파트는 거의 다 남향이죠. 가끔씩 동향도 있지만, 어쨌든 거실의 창을 기준으로 볼 때 다들 한강을 쉽게 바라볼 수 있는 남향집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저런 곳에서 살면 하루에 두어 번씩 한강을 조망하며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을 테니 참 좋겠다는 ‘부러운’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인가 봅니다.

그런데 강변남로의 강안에 줄지어 서있는 아파트에서는 죄다 거실 창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바로 북쪽으로 서울의 젖줄 한강이 기막힌 전망을 창출하며 1초의 휴식도 없이 도도히 흐르는데 말입니다. 복도형 아파트인 경우에는 예외없이 복도가 그 전망을 가로막고 있죠. 계단형 아파트인 경우에는 창고나 부엌에 조그맣게 나 있는 창문 정도가 고작이고요. 거주자가 개인적으로 내부 구조를 어떤 식으로 바꾸었는지는 내가 들어가 보질 못해 알 수 없으나, 그 집의 중심인 거실과 안방을 기준으로 볼 때, 어느 한 곳도 북향이 없다는 겁니다.

강변에 바로 위치한 아파트인데, 전망 끝내주는 북쪽을 스스로 다 봉쇄해버리고 남쪽을 향해 거실 창과 안방 창을 내었으니,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은 과연 무엇일까요? 멀대 없이 머쓱하니 솟아오른 앞 동 아파트 건물의 꽁무니(뒷모습)만 시야에 들어오지 않겠는지요?

전망 좋은 집은 경제적 부가가치도 엄청 높을 텐데, 한국의 건설회사들은 왜 그런 가치조차 스스로 포기하고 죄다 남향집만 지었을까요? 한국의 입주자들 또한 왜들 그건 걸 당연히 여기고 입주하였을까요?

남향집이 햇볕을 받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이 거 한 번 물어볼게요. 요즘 아파트 거실 안으로 직사광선 직접 받는 집이 과연 얼마나 되나요? 내가 이번 여름에 몇 군데 들어가보았는데, 요즘 강남의 아파트에서는 대개 아예 거실 창문도 열지 않고 살더군요. 그뿐인가요. 그 거실 창문마저도 블라인드로 가리고 사는 집이 많았습니다. 요컨대, 직사광선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다들 블라인드를 치고 살지 않느냐는 얘깁니다.

차라리 거실 창을 북쪽으로 내면, 비록 북향일지라도 맑은 대낮에는 직사광선은 아니지만 은은한 빛이 들어올 텐데요. 흐린 날이야 어차피 향에 관계없이 직사광선이 안 들어올 테니 밑질 것도 없잖아요. 또한 요즘 과연 어떤 아파트 거실이 순수 햇볕만으로 실내 밝기를 유지할까요? 다들 집에 있을 때에는 대개 거실의 전등을 켜고 살지 않나요?

결국, 저 좋은 전망과 경제적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고 남향만을 고집하는 (북향을 꺼려하는) 결정적 이유는 일조량 그 자체보다는 우리 민족의 오랜 관습에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민족의 관습이란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는 게 없겠지만, 그런 관습이 우리의 현재 삶을 실제로 풍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면 모를까, 만약 우리의 삶이 그런 관습에 얽매여 구속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런 관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세상에서 불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명제에 동의하신다면, 오랜 관습이니 전통이니 하는 것들도 사실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냐.. 뭐 이런 얘깁니다.


요즘은 미국에 와 1년 이상 사시는 유학생, 교포, 파견근무자 분들이 적지 않은데, 미국의 집은 향을 거의 가리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북향집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북향집에, 또는 그런 북향 아파트에 몇 년 동안 산 결과 무슨 큰 액운을 당한 한인교포가 있다는 얘기는 지난 15년 동안 전혀 들어본 바 없습니다. 설사 누군가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믿을지라도 그건 전혀 증명이 안 되는 썰(說)일 뿐이죠.

같은 아파트 단지 내 같은 동 같은 층에서 전망 좋은 북향집과 전망 없는 남향집을 동시에 분양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관습이 과연 그다지도 강한 영향을 줄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집을 고르시겠어요?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사회가 요즘 엄청난 "전환기"에 처해 있는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소위 "전환기"를 잘 극복하고 통과한 민족이나 국가들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옛 관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목시키며 새로운 관습을 창출하곤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