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진 지구, 한국 경제 ‘기상도’ 바뀌나
기후변화협약 규제 코앞에
온실가스 감축 국제 압력 커져
산업용 비중 높아 처지 ‘곤혹’
“환경산업 진출 기회” 기대도
기후변화로 지구가 헐떡이고 있다. 이런 지구를 구하기 위한 국제 약속인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우리나라를 점차 옥죄어 오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은 2008~2012년 사이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우고 1차 의무감축 대상 38개국의 실천 방안을 규정한 1997년 ‘교토의정서’를 통해 구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탈퇴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12년 이후 ‘포스트 교토체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또한 기후변화 대응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올여름 장마철보다 더 자주 쏟아진 게릴라 폭우의 배후에는 지구 온난화가 있었다. 올해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의 보고서는 금세기 말까지 기온 상승 폭은 6.4도에 이르고, 해수면은 59㎝ 올라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상청이 최근 이 위원회의 배출 시나리오에 근거해 추정한 결과, 2100년 동아시아는 2000년에 비해 2.7~4.3도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은 3.9~5.2%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한반도 기온은 4도 높아지고, 강수량은 20% 증가할 전망이다. 또 여름철 폭염이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비가 많이 올뿐더러 집중호우도 잦아져, 결국 금세기 말 한반도 남쪽은 아열대 기후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마련한 선진국들의 규제와 여러 가지 인센티브는 이미 세계경제의 판세를 바꿀 정도로 위협적이다.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판매하는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20g/㎞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거의 확정했다. 2012년부터 유럽연합 모든 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에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예정돼 있다. 세계반도체협의회는 전세계 반도체 기업의 과불화탄소(PFCs) 배출량을 2010년까지 1995년 기준으로 평균 10% 이상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감축 의무 부담이 없는 미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대거 배출권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담배 소송처럼 지구 온난화 관련 소송이 밀려들 것에 대한 예방 차원이란 지적도 있다.
■ 위기냐=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10위(1인당 배출량은 전세계 25위)인 한국은 교토의정서의 1차 의무당사국에서 빠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빠진 나라는 멕시코와 한국뿐이다. 그나마 멕시코는 자진해서 감축 목표를 발표했다. 지금은 미국의 참여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라 가려진 면이 있지만, 올해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거쳐 내년 집중논의될 포스트 교토체제에서 한국이 의무당사국 지정 또는 감축 목표를 제시하라는 국제적 압력을 비켜 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환경부의 고윤화 대기보전국장은 “특히 인도·중국 등을 끌어들여야 실질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는 유럽연합은 한국이 선도적으로 감축 목표를 제시하도록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에선 준비 없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또한 큰 위험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른 국가들보다 에너지 집약도가 훨씬 높은 산업구조를 특징으로 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의 노종환 기후대책실 실장은 “일본 같은 경우 덜컥 감축량을 약속해놓고 기후변화협약의 원래 취지에 반하는 러시아의 ‘핫에어’로 의무량을 때우려 할 정도로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고 소개했다. ‘핫에어’란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들처럼 별다른 감축 노력 없이 얻어낸 배출권을 뜻하는 말이다. 이들 국가는 자체 화력발전소 폐기 등 산업 기반의 와해에 따라 저절로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해, 교토체제에서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관계자는 “우리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핫에어’에 기대거나 최악의 경우 자동차의 절반을 굴리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기회냐=위기는 언제나 ‘기회’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질서의 재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탄소경제’라는 말이 상징하듯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대응 관련 산업과 시장이 열리고 있다. 유럽에선 2008년부터 유효한 탄소배출권이 t당 19유로 정도에 이미 거래되고 있고, 유엔의 공식인증을 거치지 않은 ‘사적 거래’도 시카고기후거래소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미 유엔이 인정하는 청정개발체제(CDM)로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해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는 기업도 상당하다.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아·태 기후변화파트너십(APP)의 실행위원회(PIC)에는 아시아개발은행, 세계은행, 일본수출입은행 등 국제금융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각국 대표들에게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술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 방안을 밝혔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진국에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선점하려면 먼저 총괄적인 그림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99년부터 기후변화협약 1차 종합대책 등을 추진해 왔다. 에너지특별회계 확보, 에너지관리공단 내 기후변화대책 조직을 구성하는 등 성과를 거둔 면도 적잖다. 하지만 일부에선 “부산으로 가는지, 대구에서 멈춰도 되는지 목표 없이 무조건 가고만 있는 상황”이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전문가들은 구체적 목표 없이는 감축 주체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일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시민단체나 환경부 중심의 ‘환경론자’와 산업계와 산업자원부 중심의 ‘현실론자’들의 시각이 맞서 왔지만, 최근엔 어느 정도의 단계적 목표라도 설정해야 한다는 데엔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은 교토체제처럼 ‘몇 년도 대비 총량 몇 % 감축한다’는 방식이 아니라 총생산에 연계하는 인덱스 방식이고, 그것도 현 단계에선 대외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주 청와대에서 열릴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얼마만큼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소 이상엽 기후변화연구실장은 “언제 어떻게 의무량을 받는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이미 감축 의무를 받고 있고 그 압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전국민에게 온실가스 감축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이란 인식을 심어 주려면 어느 정도의 목표치 설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남의 일’ 또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에 등장한 ‘우물 속의 꽃’ 비유가 유효한 듯하다. “지구에 사는 꽃 중에 그 수가 매일 두배씩 늘어나는 꽃이 있다고 하자. 한 연못의 반이 꽃으로 가득 차는 데 364일이 걸린다면, 나머지 절반이 꽃으로 가득 차는 데는 단 하루면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날 꽃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위해선 원래 크기의 연못이 더 있어야 한다. 현재 지구가 364일째를 맞이한 연못이라면….”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그래픽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온실가스 감축 국제 압력 커져
산업용 비중 높아 처지 ‘곤혹’
“환경산업 진출 기회” 기대도
2004년 한국 온실가스 배출현황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변화율 비교
■ 기회냐=위기는 언제나 ‘기회’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세계 질서의 재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탄소경제’라는 말이 상징하듯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대응 관련 산업과 시장이 열리고 있다. 유럽에선 2008년부터 유효한 탄소배출권이 t당 19유로 정도에 이미 거래되고 있고, 유엔의 공식인증을 거치지 않은 ‘사적 거래’도 시카고기후거래소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이미 유엔이 인정하는 청정개발체제(CDM)로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해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는 기업도 상당하다.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아·태 기후변화파트너십(APP)의 실행위원회(PIC)에는 아시아개발은행, 세계은행, 일본수출입은행 등 국제금융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각국 대표들에게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술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 방안을 밝혔다. 기후변화 대응의 선진국에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선점하려면 먼저 총괄적인 그림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99년부터 기후변화협약 1차 종합대책 등을 추진해 왔다. 에너지특별회계 확보, 에너지관리공단 내 기후변화대책 조직을 구성하는 등 성과를 거둔 면도 적잖다. 하지만 일부에선 “부산으로 가는지, 대구에서 멈춰도 되는지 목표 없이 무조건 가고만 있는 상황”이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전문가들은 구체적 목표 없이는 감축 주체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일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시민단체나 환경부 중심의 ‘환경론자’와 산업계와 산업자원부 중심의 ‘현실론자’들의 시각이 맞서 왔지만, 최근엔 어느 정도의 단계적 목표라도 설정해야 한다는 데엔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은 교토체제처럼 ‘몇 년도 대비 총량 몇 % 감축한다’는 방식이 아니라 총생산에 연계하는 인덱스 방식이고, 그것도 현 단계에선 대외적으로 공표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주 청와대에서 열릴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얼마만큼 구체적인 목표가 제시될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소 이상엽 기후변화연구실장은 “언제 어떻게 의무량을 받는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이미 감축 의무를 받고 있고 그 압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전국민에게 온실가스 감축은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이란 인식을 심어 주려면 어느 정도의 목표치 설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을 ‘남의 일’ 또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1972년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에 등장한 ‘우물 속의 꽃’ 비유가 유효한 듯하다. “지구에 사는 꽃 중에 그 수가 매일 두배씩 늘어나는 꽃이 있다고 하자. 한 연못의 반이 꽃으로 가득 차는 데 364일이 걸린다면, 나머지 절반이 꽃으로 가득 차는 데는 단 하루면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날 꽃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위해선 원래 크기의 연못이 더 있어야 한다. 현재 지구가 364일째를 맞이한 연못이라면….”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그래픽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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