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숲은 인공으로 조성한 마을숲이지만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만큼 고지도에도 나타나 있다. 1872년 군현도에 그려진 장기숲의 모습. / 조선총독부가 1938년 전국의 수변보안림을 조사해 발간한 <조선의 임수>에 소개한 장기숲 사진에는 탱자나무가 하층목으로 밀생한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 장기숲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장기면 주민들은 올 추석에 장기숲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 위 장기천변의 기다란 숲이 장기숲이다. 생명의숲국민운동 제공
조선시대 왜침 방어용 3.4㎞ 복층형태 군사림
새마을사업으로 사라져…‘복원추진위’ 꾸려져
새마을사업으로 사라져…‘복원추진위’ 꾸려져
배에서 내린 왜구 무리들이 거대한 숲의 장벽 앞에서 멈칫한다. 그 순간 요란한 총포 소리와 함께 나무 틈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온다. 당황한 일부 병사들은 숲속에 뛰어들었지만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 오도가도 못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다 붙잡힌다.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마현·신창리 일대 약 20㏊에 걸쳐 펼쳐져 있던 ‘장기숲’에서 벌어졌을 법한 상황이다.
한반도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마을숲이자 전형적인 군사림이던 장기숲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다.
장기숲은 조선시대 고지도에 표기될 정도로 역사가 오래지만, 1963년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경작지 개간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현재 장기중학교 등에 아름드리 노거수 20여 그루가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이 1938년 발간한 <조선의 임수>를 통해 장기숲의 옛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숲은 바다에서 장기읍성으로의 접근을 차단하는 동서로 3.4㎞ 길이로 길게 뻗은 형태이며, 숲의 폭은 100~200m에 이르렀다.
장기숲에는 활엽수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심어져 있었다. 직경이 최대 130㎝이고 키가 평균 1인 이팝나무, 느릅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큰키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밑에 약 4m 높이의 탱자나무, 신나무, 산사나무, 꾸지뽕나무 등 작은키나무들이 빽빽히 자라도록 했다.
이처럼 복층 형태로 숲을 가꾼 데는 군사적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다니기가 어려워 미로를 아는 사람들만이 다닐 수 있었다. 주민 금낙두(67·장기면 임중리)씨는 “어릴 때 숲속에 들어가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해 동네 사람들도 숲속에서 길을 잃곤 했다”고 말했다.
장기숲을 고증·답사한 장미아 생명의숲국민운동 마을숲위원은 “1495년 경상도 관찰사 황수신이 고구려 안시성 싸움 때 큰 구실을 한 목책을 세워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뒤 성마다 크고 작은 나무들로 방책을 만들게 됐다”며 “장기숲도 이 즈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장기면은 신라 때부터 매우 중요한 군사요충이었고 왜구의 침입도 잦아 군사림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장 위원은 설명했다.
장기면 주민들은 지난달 15일 장기숲복원추진위원회(회장 장종호)를 출범시킨 뒤 추석 때 장기숲의 옛 모습이 배경에 있는 ‘추억의 사진전’을 여는 등 숲 복원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시민단체인 생명의숲도 지역살리기 차원에서 전통마을숲을 복원하자는 취지에서 ‘포항 장기숲 복원 기본기획안’을 마련했다. 유영민 정책총괄팀장은 지난 26일 열린 전통마을숲 포럼에서 “장기면 주변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군사림의 원형을 살리고 역사·문화의 숲을 조성해 장기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복원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장기면 주민들은 지난달 15일 장기숲복원추진위원회(회장 장종호)를 출범시킨 뒤 추석 때 장기숲의 옛 모습이 배경에 있는 ‘추억의 사진전’을 여는 등 숲 복원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시민단체인 생명의숲도 지역살리기 차원에서 전통마을숲을 복원하자는 취지에서 ‘포항 장기숲 복원 기본기획안’을 마련했다. 유영민 정책총괄팀장은 지난 26일 열린 전통마을숲 포럼에서 “장기면 주변의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군사림의 원형을 살리고 역사·문화의 숲을 조성해 장기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복원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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