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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1 17:37 수정 : 2005.01.11 17:37


△ 해안이나 강가의 습지, 논, 갈대밭 등 본래 서식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시멘트로 발라진 사육장을 거니는 저어새. 물 한 방울 없는 시멘트 바닥에 익숙해진 이들은 단지 저어새의 모양만을 보여주는 움직이는 박제일 뿐이다.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인간 여러분! 동물답게 살고싶소

지난 2002년 1월 ‘하호’라는 이름의 환경운동연합 회원 모임이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1년간 관찰해 펴낸 ‘슬픈 동물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원의 동물들을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머리를 흔들다 사육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머리를 흔드는 수달의 ‘재롱’이 오랜 기간 폐쇄된 공간에서만 살아가는데 따른 스트레스에서 나온 ‘고통의 몸짓’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찾은 서울대공원에서 하호 회원들은 ‘슬픈 동물원’이 계속되고 있음을 안타깝게 확인해야 했다. 그들이 1년간 다시 발품을 판 결과는 지난달 ‘슬픈 동물원 2004’이라는 또 한 권의 보고서로 나왔다.

지난 6일 하호의 정상기 회장과 함께 ‘슬픈 동물원 2004’ 보고서를 들고 찾아간 서울대공원 동물원 오스트레일리아관.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캥거루의 일종인 왈라루 6마리가 생기 없이 축 늘어진 채 뒤엉켜 있었고, 조금 커 보이는 옆 칸에는 붉은 캥거루 12마리가 역시 무기력한 모습으로 한구석에 몰려 있었다. 보고서가 지적한 동물원 동물의 전형적 모습 그대로였다.


‘살아있는 박제 전략’ 2년전과 다를 게 없어
청소·관리 편하게 하자고 바닥엔 콘크리트 발라놓고
지하수로 채운 해양박물관 잔점박이 물범 시름시름
땅이 부족한것도 아닌데 왜 그리 가두어 놓는건지

오소리, 너구리, 여우 등 다른 소형동물들도 또한 대부분 습성을 발현할 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2~3평짜리 우리에 갇혀 지내고, 큰물새장에 들어갈 행운을 잡지 못한 대부분의 새들은 좁은 공간 탓에 날개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해 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마저 들게 했다. “동물원이 동물들을 살아있는 박제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보고서의 표현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 푸른 빛이 도는 흰곰. 북극에 사는 이들은 순백의 털이 특징이지만, 동물원쪽이 수족관 물을 자주 갈지 않아 생긴 녹조가 묻어 이름뿐인 흰곰이 됐다.



문제는 이런 좁은 사육장들이 동물원에 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351종 3520여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면적은 87만평으로 캐나다 토론토 동물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다. 세계 많은 동물원의 모범이 되고 있는 미국 샌디에고 동물원이 13만2000여평에 797종 4000여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것과 견줘보면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상당히 공간 여유가 있는 셈이다.

보고서가 사육장 바닥의 콘크리트 비중이 높은 것을 지적했지만, 그나마 실내 사육장의 콘크리트 바닥은 구조상 이해할 만했다. 문제는 유인원관과 곰 사육장과 같은 일부 실외 사육장 바닥까지도 콘크리트로 발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동행한 정 회장은 “청소와 관리의 편리성을 앞세우다보니 동물원 시설의 기본원칙이 밀려난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들이 동물원이라는 시설을 만드는 중요한 목적으로 꼽는 것은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이다. 이런 기능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이 동물들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동물들에게 최대한 원래 서식지와 흡사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동물원 시설의 기본이 돼야 하는 것은 그때문이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이런 기본이 가장 극단적으로 밀려나 있는 곳은 해양동물관이었다. 바다사자와 남아메리카물개, 잔점박이물범 등이 살아가고 있는 해양동물관 수조의 물은 바닷물이 아니라 동물원 지하에서 퍼올린 지하수였다. 관람객들에게 반복적 학습으로 길들여진 ‘이상행동’을 선보여 관람료 수입을 벌어다주는 태평양돌고래들만이 ‘특별대우’를 받아 바닷물을 공급받고 있었다.

▲ 해양동물인데도 민물을 채운 수족관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눈병이 생겨 고생하다 결국 한쪽 눈을 볼 수 없게 된 잔점박이물범. 하호 제공



해양동물관에서 만난 최재덕 사육사는 “외국에서도 바닷가에서 가까운 동물원만 해양동물관 수조에 바닷물을 공급하고 있고 내륙에 있는 해양동물관들은 대부분 민물로 채운다”면서 “물고기와 달리 해양포유동물류는 민물에 잘 적응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최 사육사의 뒤편 수족관 물속을 돌아다니는 잔점박이물범들 가운데 한마리는 민물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안구 염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호가 2001년 모니터를 시작하면서 확인한 안구 염증을 앓는 잔점박이물범은 모두 세 마리였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2001년말 관람객이 던진 동전을 124개나 삼킨 탓에 생긴 소화기장애로 죽고, 또 한 마리는 다른 동물원에 분양돼 한 마리만 남은 것이었다.

정 회장은 “내륙에 있는 해양동물관에 바닷물을 공급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해양동물을 굳이 전시하겠다면 바닷물을 공급해야 한다”며 “동물원이 어떤 동물에게 질병과 고통을 안겨주는 환경 밖에 제공할 수 없다면 그 동물의 사육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기력이 빠진 모습으로 사육장 벽을 핥고 있는 기린. 이런 기린의 행동은 폐쇄된 환경에서 오랜 기간 생활해온 것에 따른 이상행동으로 보고돼 있다.



한인규 서울대공원 동물원 원장은 “하호의 지적 대부분이 타당하지만 여건상 금방 바꾸지는 못하고 점차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며 “올해 유인원관의 콘크리트 바닥을 뜯어내고 별도의 관람창을 설치해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하고, 대동물관과 큰물새장에 나무와 갈대 등을 심어 코끼리나 새들이 땡볕을 피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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