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회적 공론화’ 과정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터 확보는 영국에서도 한국 못지 않게 힘든 사회문제였다. 1991년 셀라필드에 중준위 방폐장을 건설하려 했지만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1997년 취소됐다. 이에 의회는 사회적 수용성을 강조하는 정책안을 권고했고, 정부는 2001년 일반 대중과 이해관계자의 참여, 참여적 기법 활용, 공론화를 위한 독립기구 설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공론화 추진 방안을 마련했다.
공론화 기구로 2003년 출범한 방사성폐기물위원회(CORWM)는 2006년까지 2년 6개월 동안 공론화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정부에 권고했다. 위원회는 전문가와 일반 시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전국 이해관계자 포럼, 시민패널, 토론그룹, 학교 프로젝트, 원전 지역 이해관계자 원탁회의, 공개회의, 토론가이드, 홈페이지 운영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런 공론화를 통해 얻은 결론은 △방사성폐기물은 장기적으로 지층 깊숙이 묻는다 △중간저장을 장기 관리 전략에 포함한다 △향후 일정은 단계별 검토를 통해 진행한다 △일반 대중과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정부는 자발적으로 처분장을 유치하겠다는 후보 지역과 파트너십을 형성한다 △터 선정을 감독할 독립기관을 설립한다 등이다.
영국의 공론화는 한국과 유사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지지로 실시됐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시에 적용하고 숙의적 참여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으며, 단계적 목표를 설정한 접근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대안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데 쓴 다기준 의사결정방법(MCDA)은 주목할 만하다.
정익철/런던대 계획학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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