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대봉은 북방계 식물인 나도범의귀의 국내 유일 분포지다. 안테나 모양이꽃이 특이하다. 동북아식물연구소 제공
[환경 현장]
인터넷 소문으로 동호인들 몰려 꽃들 ‘비명’
떼거리 관광객들 무심코 딛는 발길에 ‘횡사’
인터넷 소문으로 동호인들 몰려 꽃들 ‘비명’
떼거리 관광객들 무심코 딛는 발길에 ‘횡사’
■ 인터넷 손끝의 ‘위력’=태백산 북쪽에 있는 금대봉(해발 1418m)에서 꽃산행을 하던 한 아마추어 식물애호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텔레비전 안테나와 비슷한 독특한 꽃 모양이 얼마 전 백두산에서 본 나도범의귀와 꼭 같았다.
북한의 부전고원과 두만강 유역 등 추운 곳에만 사는 식물이 국내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식물동호인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식물학계엔 보고도 되기 전이었다.
연휴 첫날이던 지난 6일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 관리사무소에서 20여명의 사진동호회원들과 환경감시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감시원은 자연훼손을 이유로 촬영용 삼각대 반입을 막으려 했지만 동호회원들은 "그런 규정이 어딨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환경감시원 김병철씨는 "지난 한 달 내내 나도범의귀를 찍으려는 동호인들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동북아식물연구소 현진오 박사와 함께 나도범의귀 생육지를 찾았다. 모두 100여 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작아서 식별도 쉽지 않은 이 식물 주변엔 온통 발자국 투성이었다. 그러나 태백시가 설치한 인공구조물은 나도범의귀의 더 넓은 자생지를 뭉개고 들어서 있었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육지는 모두 합쳐야 40㎡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 무심한 발길의 ‘치명타’=지난 7일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댄 관광객들이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대부분 한강 발원지인 검용소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무심코 밟고 다니는 길 가장자리 곳곳엔 희귀식물인 대성쓴풀이 자라고 있었다.
이우철 전 강원대 교수가 1984년 학계에 미기록종으로 보고한 이 식물은 몽골과 러시아 캄차카 등 북방계 식물이다. 북한에서도 보고되지 않은 이 식물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금대봉에서 자라는 이유를 학계는 아직 모르고 있다.
현진오 박사는 "빙하기가 물러나면서 석회암 지대의 특이한 환경 때문에 북방계 고산식물의 드문 삶터로 남게 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관광객을 위한 진입로 공사를 위해 자동차가 드나들면서 이 식물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대성쓴풀은 개망초 등 외래종과 함께 햇빛이 잘 비치는 길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이어서, 외래식물 제거작업 때 한순간에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커 보였다.
태백/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대덕산 금대봉 경관생태보전지역 전경. 주말이면 1천명 가까운 관광객이 검용소 등을 보러 온다.
대성쓴풀(왼쪽)과 나리난초.
그러나 관광객을 위한 진입로 공사를 위해 자동차가 드나들면서 이 식물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대성쓴풀은 개망초 등 외래종과 함께 햇빛이 잘 비치는 길가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이어서, 외래식물 제거작업 때 한순간에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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