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요즘 도토리를 채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몇 해 전 참나무를 연구하는 국제 학술 모임에서 한국에서는 상수리나무를 많이 마을 주변에 심어 두고, 가을에 마을사람들은 큰 떡메로 상수리나무를 때려서 도토리를 채집하여 묵을 쑤어 먹었던 시절이 있었고,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나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북미 지역의 인디언이 오래 전에 이용했고,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 이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지만, 전 국민이 이렇게 도토리를 즐겨 먹는 한국에 대해 외국 학자들은 큰 관심을 나타냈다. 특히 도토리의 탄닌 등 쓴맛을 어떻게 제거하느냐고 공개적으로 질문을 받기도 했다.
도토리의 탄닌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바닷물을 이용하거나, 물에 담가두는 방법을 이용하여 가을철에 쌀 생산량이 낮았을 때 대체 식용자원으로 이용하였다. 흔히 마을 사람들은 “봄철에 비가 많이 오면 나락 농사가 잘 되고, 바람이 많이 불면 도토리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도토리는 대부분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되므로, 봄철에 비가 많이 오면 꽃가루받이가 잘 되지 않지만, 바람이 불고 건조하면 생산량은 높을 수 있다. 조상들이 쌀농사와 도토리 채취를 병행한 것은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서 상보적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려 하였던 조상들의 지혜가 배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광릉숲에서 측정한 도토리 생산량은 대개 4~5년 정도의 해거리를 나타낸다. 산림청이 집계한 전국의 도토리 생산량 통계 자료에 의하면 2002년에 166만㎏에 달하는 최대 생산량을 나타내다 2007년에 70만㎏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나, 올해 몇 몇 농가와 인터뷰를 해보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6년만에 생산량이 증가 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은 도토리뿐만 아니라 산림자원 및 임산물에 대해 채취를 금하고 있으며, 법적으로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명시하고 있다. 국유림에서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하며, 불법 채취 행위에 대해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도토리묵을 선호하는 인구가 증가하여 불법채취에 대한 현장 단속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값싼 중국산 도토리 가루가 들어와서 우리나라의 도토리 가루로 만든 묵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임산물 중 송이와 고로쇠 수액 등은 값이 비싸고 일부 지역에 한정하여 분포하므로 채취허가권을 공고해 매각하지만, 도토리는 상대적으로 값이 싸고 전국 곳곳에 분포하므로 채취허가권을 활용하는 것은 국민 정서와 현실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적극적 단속으로 도토리 채취를 금하고 있지만, 국민의 의식이 변화할 수 있도록 과학적 지식과 사실에 기초한 계몽 및 홍보가 우선이다.
도토리 채취는 들짐승에게 영향을 끼친다. 도토리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소형 포유류의 밀도는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멧돼지는 땅을 훑어가면서 이용할 정도로 도토리를 좋아하며, 소형 포유류 중 등줄쥐와 흰넓적다리붉은쥐, 다람쥐, 청설모 등은 도토리를 가을철에 먹이로 이용한다. 동고비, 곤줄박이, 어치, 원앙같은 새들도 도토리를 이용하며 겨울까지 저장된 도토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도토리는 동물의 먹거리가 증가하는 봄철 이전, 특히 겨울철 혹독한 시기에 월동을 위한 저장식량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도토리 채취는 들짐승의 겨울나기를 힘들게 하며, 다음해 번식도 어렵게 할 수 있다.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류는 자연 상태에서 싹이 나서 어린 나무, 큰 나무로 되어 숲을 만들지만, 인간이 도토리를 이용함에 따라 어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인간이 도토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지정된 숲길 및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아서 토양에 답압을 미치는 것도 산림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어렸을 적 외갓집 뒷동산에서 도토리를 주어서 묵을 쑤어 먹었던 그 씁쓸하고도 맛있는 기억은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아마 힘든 시기에 같이 했던 음식인지라 가을이 되면 이 맛에 현혹되어 산에서 도토리를 줍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을숲 중 상수리나무를 식재한 곳도 적지 않게 남아 있을 정도이니 전국적으로 도토리를 이용하였다. 전통적 관습에 의해 생존을 위해 도토리를 이용하였던 행위는 적법한 장소에서 이어져야 하지만, 적법하지 않은 장소에서 상업적 목적에 의한 도토리 채취는 하지 말아야 한다.
도토리는 야생동물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필수적인 월동자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천연먹이이다. 야생동물이 먹어야 할 도토리를 우리가 이용하고 겨울철에 야생동물을 위한 인공먹이를 공급해야만 하는 우를 범해야 하는가? 도토리 채취로 산에 먹을 것이 부족할 경우, 야생동물은 농작물 및 인가로 와서 우리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 국민 모두 도토리 채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먹기 힘든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조상들이 지혜를 모아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던 것을 잊지 말자. 이제는 그 조상들의 지혜를 가슴에 안고 야생동물에게 자연 그대로의 먹이인 도토리를 마음껏 가지도록 배려해주자.
박찬열/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 박사(park@for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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