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시 봉길리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공사 현장에서 작업 인부가 방폐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굴 옆면에 철심을 심어 연약한 암반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제공
경주 방폐장 공사 안전성 문제로 지연
월성 ‘사용후 핵연료’ 저장공간 한계점
정부 공론화위는 열지도 못하고 돌연 연기
월성 ‘사용후 핵연료’ 저장공간 한계점
정부 공론화위는 열지도 못하고 돌연 연기
지난 28일 찾은 경북 경주시 봉길리의 야트막한 언덕 옆에는 높이 6.5m의 동굴 두 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나온 폐기물을 땅속에 묻기 위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을 건설하고 있는 현장이다. 두 개의 동굴은 해수면 아래 80~130m 위치에 폐기물을 묻을 6개의 대형 사일로로 이어진다. 홍광표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본부장은 “전체 1950m 길이의 동굴 가운데 500m가량을 파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경주 방폐장은 지난 6월 ‘암반 연약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준공 시기를 2010년에서 2012년으로 연기했다. 정부와 공단은 “시간과 비용은 더 들겠지만, 방폐물 처분을 위한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환경단체들은 “연약한 암반대가 많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공사기간 연장에 따라 각 원전에서 넘쳐나는 방폐물 처리도 문젯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방폐장 바로 옆 월성 원자력발전소에는 중저준위 방폐물보다 더 사회적 논란이 큰 ‘사용후 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원자로에서 태우고 남은 연료다발은 먼저 수영장 크기의 수조 속에 보관하며, 6~7년 뒤에는 수조 밖으로 꺼내 ‘캐니스터’라 하는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담아둔다. 월성 원전에서 한 해 배출하는 사용후 핵연료는 5400다발인데, 비어 있는 캐니스터는 현재 2개밖에 없다.
한쪽에선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지만, 원자력 산업의 핵심인 폐기물 관련 정책은 이처럼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7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공론화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출범을 1년 뒤로 미뤘다. 2016년이면 각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량이 한계에 이른다며 공론화를 서둘러왔던 터라 연기 배경을 둘러싸고도 뒷말이 나온다.
정부는 “공론화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과 전문가들의 사전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지난해 환경단체까지 참여한 공론화 권고보고서가 나오는 등 여러 차례 검토가 이뤄진 적이 있어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경주 방폐장 터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상태에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발을 해결하지 않은 채 위원회를 공식화시키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황주호 경희대 교수(원자력공학)는 “지난 6월 공론화 프로그램 설계를 마치고 정부와 공단에 제출한 바 있다”며 “지금은 전문가 의견보다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헌석 청년환경센터 대표는 “원전 건설에 대해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지만, 폐기물 정책은 그동안 감추는 데 급급해 지지부진했다”며 “정상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한국방사성폐기물 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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