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 뒤 달라진 1990년 강화도 해안선
간척으로 수십개 섬 연결
1916년 2269㎢ 면적
2004년엔 여의도 땅 30배 늘어
1916년 2269㎢ 면적
2004년엔 여의도 땅 30배 늘어
강화도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강화도는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연결돼 있어 섬보다 육지에 가까운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현재 강화도와 강화도 옆 석모도는 수십개의 섬을 연결한 간척사업으로 오늘의 해안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참성단이 있어 강화도의 명소인 마니산도 엄밀하게 말하면 강화도의 섬이 아니었다. 강화도의 높은 콧대도 알고 보면 성형을 한 셈이다.
원래 마니산은 강화도 남서쪽 고가도에 있던 섬이다. 조선시대인 1600년의 간척사업으로 고가도가 강화도와 합쳐지면서 강화도 땅이 됐다. 1664년 강화도 유수인 조복양이 강화도의 가릉포와 고가도의 선두포에 둑을 쌓아 강화도와 고가도를 연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화도의 간척사업은 고려 때부터 왕성했다. 고려는 1200년대부터 강화도 북쪽의 망월포와 와포를 메워 간척논을 만들었다. 강화도 북쪽의 교동도 앞 갯벌도 넓혔다. 마니산이 있던 고가도 주변의 간척사업도 이미 고려 때부터 시작됐던 일이다. 고려시대의 강화도 간척사업은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피란을 간 고려 정부가 식량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됐다고 역사학자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간척사업은 산업화 이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제가 측량한 자료를 보면 1916년 강화도와 인천 일대의 육지와 도서 면적은 2269㎢였지만 2004년에는 2486㎢로 증가했다. 여의도 면적(8.5㎢)의 약 30배에 이르는 간척지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이는 강화도와 인천 일대 전체 육지 면적의 22.6%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이런 간척은 강화도뿐 아니라 서해안 전 지역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신도시와 공단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영양이 풍부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 세계 최대 갯벌이라는 서해안의 갯벌은 이 때문에 지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이런 간척사업은 갯벌이 많은 서해안 전 해안선에 걸쳐 진행돼 왔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1910년 평균 2148㎞였던 서해안의 길이는 1448㎞로 90년 사이에 40.3%가 줄었다. 길이뿐 아니라 해안선이 얼마나 들고 났느냐를 나타내는 수치인 굴곡도(직선이면 0)도 1910년 8.16에서 4.47로 낮아졌다. 이렇게 간척된 해안선의 10㎞ 이내 토지는 대부분 경작지와 주거지, 산업단지가 차지하고 있는 반면 녹지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권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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