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소나무좀)과 회색곰(오른쪽). 지구온난화로 딱정벌레의 번식주기가 단축되면서 회색곰의 먹이가 열리는 화이트 바크 파인이 고사하고 있다.
몸무게가 500㎏ 가까이 자라는 거대한 북미산 회색곰이 쌀알 만한 딱정벌레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미국 국립공원협회는 최근 발행한 보고서 ‘야생동물: 더워지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에서 미국 국립공원에서 관찰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교란 사례를 소개했다.
영양 풍부한 주식인 잣 부족해 번식에 치명타
로키산 국립공원은 롯지폴 소나무로 빽빽하게 덮여 있다. 꼿꼿하게 자라 인디언이 천막 지주목으로 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소나무의 천적은 소나무좀이란 작은 딱정벌레인데, 나무에 구멍을 내 알을 낳아 번식하며 침입당한 나무는 고사하고 만다.
롯지폴 소나무가 그저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수공과 화공으로 딱정벌레에 대항한다. 다량의 송진을 내어 소나무좀을 익사시키는가 하면 산불로 태워죽이기도 한다. 이 소나무는 산불에 잘 견딜 뿐 아니라 산불이 솔방울을 그슬려야 씨앗이 방출돼 번식을 한다. 게다가 날씨가 5도 이하로 열흘만 계속돼도 벌레는 죽어버린다. 소나무와 딱정벌레의 오랜 균형은 지구온난화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달라진 기후가 벌레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소나무좀이 낳은 알이 성체가 돼 다시 알을 낳기까지 2년 걸리던 것이 1년으로 줄어들었다. 두 배로 늘어난 딱정벌레는 더워진 고지대로 밀려 들었다. 고지대엔 롯지폴 소나무와 달리 소나무좀과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래서 저항력이 전혀 없는 화이트 바크 파인이란 소나무가 분포한다. 수피가 흰 이 소나무에는 다량의 잣이 달리는데, 바로 이 잣이 월동 전 회색곰의 중요한 먹이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화이트 바크 파인의 90% 이상이 이미 딱정벌레의 피해를 입어 고사했다. 고산지대에 사는 회색곰은 영양분이 풍부한 잣을 양껏 먹고 지방을 축적해 겨울잠을 자고 새끼도 낳는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잣의 생산량이 많을수록 새끼의 무게와 건강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잣이 부족하면 회색곰은 번식에 치명타를 입는 것이다. 눈 빨리 녹아 홍수 일찍 발생해 때 이르게 쓸려 내려가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야생동물이 살아가는데 핵심 요인인 먹이, 물, 피신처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했다.
이미 댐 건설, 남획, 수질오염, 벌목 등의 영향을 받고 있는 연어는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겨울에 눈이 적게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이 일찍 녹으면서 홍수가 일찍 발생한다. 알에서 깬 연어새끼는 바다에 먹이가 될 플랑크톤이 많아질 때를 맞춰 바다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른 홍수에 쓸려 내려가면서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다. 연어의 본고장인 태평양 북서부 올림픽, 레이니어, 노스캐스케이드 국립공원 등지에서 2006년과 2007년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
북극의 대표적인 동물인 순록도 위협받고 있다. 알래스카는 산업화 이후 온도가 5도나 상승하면서 식생이 급변하고 있다. 순록의 암컷은 새끼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할 식물이 자라나는 시기에 맞춰 새끼를 낳는데, 40만 년 동안 이어지던 리듬이 깨지고 있다.
또 식물이 일찍 싹트고 일찍 시들면서 겨울에 대비해 지방을 축적해야 하는 가을철 먹이부족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겨울에는 눈만 오던 곳에 비가 오면서 밤새 단단히 얼어 순록이 눈 속의 마른 풀을 꺼내 먹는 것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화재가 잦아지면서 순록의 먹이인 지의류가 타버리고, 동토가 녹으면서 지의류가 자라던 곳이 덤불로 바뀌기도 한다.
짐 스트래튼 국립공원협회 알래스카 지역국장은 “기후변화를 피해 야생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연결통로를 확보해 줘야 한다”며 “국립공원엔 수많은 탐방객이 찾기 때문에 공원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롯지폴 소나무가 그저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수공과 화공으로 딱정벌레에 대항한다. 다량의 송진을 내어 소나무좀을 익사시키는가 하면 산불로 태워죽이기도 한다. 이 소나무는 산불에 잘 견딜 뿐 아니라 산불이 솔방울을 그슬려야 씨앗이 방출돼 번식을 한다. 게다가 날씨가 5도 이하로 열흘만 계속돼도 벌레는 죽어버린다. 소나무와 딱정벌레의 오랜 균형은 지구온난화로 속절없이 무너졌다. 달라진 기후가 벌레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소나무좀이 낳은 알이 성체가 돼 다시 알을 낳기까지 2년 걸리던 것이 1년으로 줄어들었다. 두 배로 늘어난 딱정벌레는 더워진 고지대로 밀려 들었다. 고지대엔 롯지폴 소나무와 달리 소나무좀과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래서 저항력이 전혀 없는 화이트 바크 파인이란 소나무가 분포한다. 수피가 흰 이 소나무에는 다량의 잣이 달리는데, 바로 이 잣이 월동 전 회색곰의 중요한 먹이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화이트 바크 파인의 90% 이상이 이미 딱정벌레의 피해를 입어 고사했다. 고산지대에 사는 회색곰은 영양분이 풍부한 잣을 양껏 먹고 지방을 축적해 겨울잠을 자고 새끼도 낳는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잣의 생산량이 많을수록 새끼의 무게와 건강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잣이 부족하면 회색곰은 번식에 치명타를 입는 것이다. 눈 빨리 녹아 홍수 일찍 발생해 때 이르게 쓸려 내려가
기후변화로 생태계의 오랜 균형이 깨지면서 피해를 입고 있는 순록(왼쪽)과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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