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문소에서 출토된 삼엽충 화석. 크기가 꽤 크다. 사진 제공 화석수목전시관 소장
[살아있는 한반도]<2부> 생명의 땅 ① 삼엽충의 고향
당시엔 얕은 바다로 삼엽충 등 다양한 생물 살아
평창과 영월 사이 중간쯤이 없는 것은 ‘수수께끼’
고생물학자들은 강원도 태백, 영월, 평창, 정선으로 둘러싸인 태백산 분지에서 바다 냄새를 맡는다. 약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얕은 바다였다. 해안에는 따가운 햇볕에 졸여진 소금결정이 반짝였고, 바다 속에는 삼엽충들이 조개와 오징어의 조상 사이로 꾸물꾸물 돌아다녔다. 5억년이 얼마나 먼 과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길이로 환산하면 된다. 1년이 1㎝라면 5억년은 5000㎞,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이다. 요즘 학생들에겐 1원과 서울의 중형 아파트 값으로 비교하는 편이 쉽다는 지질학 교수도 있다. 당시 태백산 분지는 적도 부근에서 막 오스트레일리아와 헤어져 북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태백산 분지가 올라탄 북중국 땅덩어리에는 오늘날의 북한 평남 분지, 중국의 산둥, 만주, 시안이 함께 있었다(남중국과 함께 있던 경기지역과는 한참 뒤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만난다). 수천㎞에 걸쳐 산이라고는 없는 평탄한 땅과 얕은 대륙붕이 멀리 뻗어나간 독특한 곳이었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 지난 3일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를 찾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5억4천만년~4억6천만년 전) 사이 태백산 분지에 쌓인 약 1200m 두께의 퇴적층 가운데 최상부에 가까운 곳이다. 지층이 비스듬히 누워 있어 여기서 남동쪽으로 갈수록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태백시가 짓고 있는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터 아래 황지천변에 짙은 회색의 펄이 굳은 ‘셰일’이 깔려 있었다. 동행한 박태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씨가 단단한 암석표면을 가리켰다. 완족류와 두족류와 함께 세 쪽으로 나뉜 몸과 빗살무늬의 마디가 선명한 삼엽충 화석이 들어 있었다.박씨는 “이곳은 태백산 분지에서도 화석이 가장 풍부한 곳”이라며 “얕은 바다였던 곳이어서 삼엽충과 함께 필석,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두족류, 개형충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하류로 50m쯤 내려오자 암반이 흰 돌로마이트로 바뀐다. 셰일 층보다 약 1천만년쯤 전에 퇴적한 석회암의 일종이다. 층층이 가지런하게 쌓인 돌로마이트를 마구 헤집어놓은 수많은 저서생물의 흔적과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거나 물결이 남긴 자국 화석이 당시 환경을 말해 준다.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구문소는 적도의 태양 아래 증발이 많고 염분이 높은 조간대의 특성을 보여 오늘날의 페르시아만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태백산 분지 퇴적층의 더 먼 과거를 보기 위해 경북 봉화군 석포리 석개재로 향했다. 석개재 임도를 따라 고생대 초기 지층이 펼쳐져 있다. 구문소보다 2천만~3천만년 전 조금 더 깊은 바다 밑에 쌓인 퇴적층이다.
약 5억년 전 지층은 회색 석회암과 황토색 셰일이 교대로 쌓여 시루떡 같은 모습이었다. 생물활동이 왕성해 석회암이 쌓이다가 무언가의 이유로 중단되고 펄이 쌓이는 일이 수백만년 동안 계속됐다. 이 임도를 따라 한 시간을 걸으면 적어도 5천만년 동안의 퇴적층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암석 곳곳에는 연구자들이 화석 등을 연구하기 위해 흰 페인트로 채집 위치를 표시해 놓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 동안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금보다 10배나 높았다.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았고 풍부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탄산칼슘 골격을 만드는 삼엽충, 완족동물 등 생물이 번창했다. 전 세계에 걸쳐 막대한 양의 석회암이 이때 형성됐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이다.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
태백산 분지에서 1924년 처음으로 삼엽충 화석을 발견한 이래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은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특히 고바야시 도쿄대 교수는 1931~1971년 동안 연구결과를 보고해 한반도 삼엽충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1990년대 들어서야 최덕근 서울대 교수 등 한국인에 의한 삼엽충 연구가 본격 시작됐다. 1995년에는 영월의 삼엽충을 연구한 최초의 국내 박사가 배출됐다. 최 교수는 “어떤 삼엽충이 있나를 넘어 삼엽충의 진화와 발생, 고환경 복원으로 연구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백과 영월의 삼엽충이 왜 다른지는 흥미로운 관심거리이다. 캄브리아기의 4천만년 동안 두 곳에서 서식한 삼엽충 가운데 같은 종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오르도비스기로 가면 공통종이 나타난다. 최 교수는 캄브리아기에 좀더 깊은 바다였던 영월이 오르도비스기에 들어 퇴적작용으로 수심이 낮아지면서 태백과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영월과 태백의 중간쯤 되는 수심을 가진 지역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는 것은 미스터리다.
고생대의 오르도비스기 중엽인 4억4천만년 전부터 석탄기에 이르는 1억5천만년 동안 퇴적층이 전혀 없는 ‘대결층’도 수수께끼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와 북중국에서 나타나는 이 현상이 “해수면이 하강해 태백산 분지가 육지가 됐지만 퇴적물을 공급할 높은 산지가 없었고, 곤드와나 대륙에서 떨어져 대륙이 이동하는 과정이어서 퇴적층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을 밝혔다.
태백/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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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얕은 바다로 삼엽충 등 다양한 생물 살아
평창과 영월 사이 중간쯤이 없는 것은 ‘수수께끼’
고생물학자들은 강원도 태백, 영월, 평창, 정선으로 둘러싸인 태백산 분지에서 바다 냄새를 맡는다. 약 5억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기 때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얕은 바다였다. 해안에는 따가운 햇볕에 졸여진 소금결정이 반짝였고, 바다 속에는 삼엽충들이 조개와 오징어의 조상 사이로 꾸물꾸물 돌아다녔다. 5억년이 얼마나 먼 과거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길이로 환산하면 된다. 1년이 1㎝라면 5억년은 5000㎞, 서울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까지의 거리이다. 요즘 학생들에겐 1원과 서울의 중형 아파트 값으로 비교하는 편이 쉽다는 지질학 교수도 있다. 당시 태백산 분지는 적도 부근에서 막 오스트레일리아와 헤어져 북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태백산 분지가 올라탄 북중국 땅덩어리에는 오늘날의 북한 평남 분지, 중국의 산둥, 만주, 시안이 함께 있었다(남중국과 함께 있던 경기지역과는 한참 뒤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만난다). 수천㎞에 걸쳐 산이라고는 없는 평탄한 땅과 얕은 대륙붕이 멀리 뻗어나간 독특한 곳이었다.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 근처 황지천 변에서 발견된 삼엽충의 꼬리 부분 화석. 고생대 초 얕은 바다였던 이곳에선 조개와 오징어 조상 등 다양한 생물 화석이 나온다.
석회암을 원료로 만드는 시멘트는 삼엽충이 준 선물 지난 3일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구문소를 찾았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5억4천만년~4억6천만년 전) 사이 태백산 분지에 쌓인 약 1200m 두께의 퇴적층 가운데 최상부에 가까운 곳이다. 지층이 비스듬히 누워 있어 여기서 남동쪽으로 갈수록 과거로 거슬러 오른다. 태백시가 짓고 있는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터 아래 황지천변에 짙은 회색의 펄이 굳은 ‘셰일’이 깔려 있었다. 동행한 박태윤(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박사과정)씨가 단단한 암석표면을 가리켰다. 완족류와 두족류와 함께 세 쪽으로 나뉜 몸과 빗살무늬의 마디가 선명한 삼엽충 화석이 들어 있었다.박씨는 “이곳은 태백산 분지에서도 화석이 가장 풍부한 곳”이라며 “얕은 바다였던 곳이어서 삼엽충과 함께 필석,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두족류, 개형충 등 다양한 동물 화석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삼엽충이 살던 고생대 바다밑 가상도.
오르도비스기의 조간대가 말라 갈라진 흔적인 건열 화석(위)과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지도.
화석에 침투한 황철광이 미처 녹슬지 않아 반짝이고 있는 금빛삼엽충(왼쪽)과 바다 밑바닥 생물들이 퇴적층을 뒤적인 흔적을 보여주는 구문소의 생흔화석.
석개제 임도에 드러난 고생대 퇴적층. 셰일과 석회암이 번갈아 퇴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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