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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가로림만 물범을 살려주세요”

등록 2010-06-16 20:34

보존 상태가 훌륭한 가로림만 갯벌에선 주민들이 바지락, 굴 등을 채취해 가구당 한 해에 3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연간 약 10cm의 두께로 퇴적현상이 발생해 갯벌의 질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제공
보존 상태가 훌륭한 가로림만 갯벌에선 주민들이 바지락, 굴 등을 채취해 가구당 한 해에 3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연간 약 10cm의 두께로 퇴적현상이 발생해 갯벌의 질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제공
조력발전소 계획대로 건설되면 댐 안에 갇힐판
주민들 “최고 자연갯벌 훼손 안돼” 투쟁위 꾸려
* 물범 : 천연기념물 331호
충남 태안반도의 가로림만에 물범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몰랐다. 20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 뿐이다.

지난 14일 오전, 낚싯배를 타고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를 떠났다. 약 1㎞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배를 세우고 물범을 기다렸다. 썰물로 바닷물이 빠지면서 바다 한가운데서 풀등(모래톱)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물범이 나타났다. 물범은 고개를 내밀고 사람들을 말똥말똥 쳐다봤다.

사실 물범은 예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다. 오지리 이장 지윤근(58)씨는 어렸을 적 망둥이를 잡으러 갯벌에 나가면 물범들이 풀등에서 시커멓게 떼를 지어 낮잠을 자던 광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우리 아버지 때도 있었다니까, 옛날 옛적부터 살았을 거예요.”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예정지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예정지
그렇지만 가로림만 물범은 해마다 줄어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십 마리 시절을 기억하지만, 지난해는 9마리, 올해는 5마리만 관찰됐다. 이 물범은 잔점박이물범(천연기념물 331호)이다. 중국 랴오둥반도에서 겨울을 나고 백령도에서 여름을 나는 물범과 같은 개체다. 하지만 이밖에 알려진 건 아무것도 없다. 국가는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생태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 가로림만 조력발전소가 생긴다. 조력발전소는 바다에 설치되는 일종의 ‘댐’이다. 가로림만 하구(서산시 대산읍 오지리~태안군 이원면 내리)에 방조제를 쌓고 이곳을 드나드는 밀물과 썰물의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든다. 설계대로 2014년에 발전소가 완공되면, 물범은 댐 안에 갇히게 된다.

지난 정부 때 경제성이 없다고 보류됐던 가로림만 발전소는 이명박 정부 들어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3월 지식경제부 전기위원회가 발전사업을 허가했고, 공유수면매립사업에 따른 사전환경성검토도 마쳤다. 지식경제부가 전원개발실시계획을 승인하고 환경영향평가도 마치면 이르면 내년 초 공사에 들어갈 수 있다.


“가로림만 물범을 살려주세요”
“가로림만 물범을 살려주세요”
하지만 물범이 환경영향평가의 변수다. 발전소의 방조제 탓에 모래톱이 사라지고 가로림만 바깥으로 이어지는 물범의 이동통로도 막히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를 맡은 고래연구소 관계자는 “정확한 생태영향과 보전대책은 연구가 진행된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를 꾸려 발전소 건설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들에게 갯벌은 ‘주인 없는 통장’이나 다름없다. 갯벌에서 하루에 3~4시간 바지락을 캐면 5만~6만원을 벌 수 있다. 박정섭 투쟁위원장은 “발전소를 지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자연갯벌인 가로림만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며 “갯벌에 생계를 기댄 주민들도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업자인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에 따라 재생에너지 비율 2%를 맞추려면 조력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며 “환경영향평가가 나오는 대로 물범 보전대책을 시행하는 등 환경피해를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평주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물범의 보전대책이란 있을 수 없다”며 “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물범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진을 끄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다시 나타난 물범이 어선과 거리를 좁히며 자맥질을 해댔다. 조금 전까진 1~2마리였는데, 이젠 5마리 전부가 모였다. 물범들은 자신의 삶터에 발전소가 생긴다는 걸 알고 있을까.

서산/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갯벌 망치는 조력발전소가 녹색성장?

3년전 취소한 가로림만 사업, ‘재생에너지 할당제’로 재추진

한국에서는 현재 3곳에서 조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충남 태안반도의 가로림만을 비롯해 강화도와 인천만에서도 각각 2016년과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세 곳의 발전소는 모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에서 상용 운전중인 조력발전소는 프랑스의 랑스 발전소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이 발전소는 1966년에 지어졌는데, 그 뒤로는 단 한 곳도 상용화되지 않은 것이다.

전승수 전남대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한국이 추진중인 조력발전소는 갯벌 훼손 때문에 이미 선진국이 등을 돌린 방식”이라며 “사실상 수력발전소를 좁은 만에 갖다 놓은 것이기 때문에 첨단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조력발전소의 기술적 용이성에 대해선 정부와 발전회사도 동의한다. 그동안 축적한 수력발전소 건설기술을 응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력발전소가 확산되지 않은 이유를 두고서는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다른 나라는 마땅한 입지가 없어 상용발전을 하지 못한 것”이라며 “최근에는 중국이 여러 곳에 발전소를 추진하는 등 앞서가고 있어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가로림만은 전북 부안 곰소만과 함께 자연해안을 간직한 1급 갯벌이다. 2007년 당시 해양수산부가 벌인 갯벌의 환경가치평가 연구용역에서도 환경가치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조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비용 대비 편익도 경제성이 없는 0.82에 불과해 사실상 건설사업은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면서 ‘녹색 성장’이 주요 정책이 됐고,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가 시행되게 됐다. 이에 따라 각 발전사들은 총 발전량의 2%를 재생에너지로 채우기 위해 풍력이나 태양열 대신 손쉽게 할당량을 채울 수 있는 대규모 조력발전소 건설에 나선 것이다. 서부발전은 지난해 가로림만 발전소의 비용 대비 편익을 다시 조사했고, 이때에는 경제성이 있음을 뜻하는 1 이상으로 나왔다.

외국에서는 친환경 발전소 건설도 ‘속도전’보다는 기술 개발과 사회적 합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환경영향이 적은 조류발전소에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고 전 교수는 소개했다. 그는 “무작정 조력발전소를 짓는 것은 갯벌의 미래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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