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전체에 붉은 깃이 달린 까막딱따구리 수컷이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기새들에게 잡아온 벌레를 먹이고 있다.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는 수컷이고, 부리만 보이는 아기새는 암컷이다. 이 둥지 안에는 암컷 두마리와 수컷 한마리의 아기새가 자라고 있다.
뻐꾸기 소리만 이따금 울려퍼지던 강원도 홍천의 은사시나무 숲이 3일 오전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파랑새가 꾸룩꾸루룩 소리를 내며 날자, 머리 전체가 붉은 깃으로 덮인 까막딱따구리 수컷이 그 뒤를 바짝 붙어 쫓는다. 파랑새는 딱따구리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기도 한다. 이들이 좌충우돌 날며 나뭇잎과 부딪치고 날개짓을 하느라 고요한 숲의 평화가 깨졌다. 머리 뒤쪽에만 붉은 깃이 있는 까막딱따구리 암컷이 둥지 근처 나무에 붙어 파랑새를 지켜보고 있다. 20여cm 크기로 은사시나무에 구멍이 뚫린 까막딱따구리 둥지로 아기 까막딱따구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울어댄다.
오전 내내 파랑새와 추격전을 벌인 수컷이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둥지로 날아왔다. 아기새들이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한마리씩 교대로 입 속에 물어온 벌레를 넣어준다. 이 둥지 안에는 암컷 두 마리와 수컷 한 마리의 아기새가 자라고 있다. 먹이를 다 먹인 수컷은 둥지 안으로 들어가 청소를 한다. 2~3분여가 지난 뒤 둥지를 빠져나와 날아오른 수컷의 입에는 아기새들의 배설물이 물려 있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까막딱따구리 부부가 함께 날아왔다. 이번엔 둥지 주변 나뭇가지에서 청설모가 아기새들을 노리고 배회한다. 암수가 교대로 둥지 주변을 날며 ‘위력시위’를 계속한다. 청설모가 어디론가 사라진 뒤 수컷은 아기들과 함께 자려고 둥지 안으로 들어간다. 암컷은 근처 다른 나무 안에 마련한 둥지로 자러간다.
한반도에서 흔한 텃새였던 까막딱따구리는 나무를 마구 베어내 숲이 사라지면서 멸종위기에 처해 1973년 천연기념물 제242호로 지정됐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은 “숲이 많이 늘어났지만, 까막딱따구리 개체수는 늘지 않고 여전히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한번에 두세개의 알을 낳아 키우는 까막딱따구리가 천적의 공격 등을 피해 아기새들을 키워 둥지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홍천/이정우 선임기자woo@hani.co.kr
①파랑새와 추격전을 벌이느라 어미새도 아비새도 날아오지 않자 아기새 한마리가 둥지 밖으로 몸을 내민 채 울어대고 있다.
②파랑새를 따돌리고 날아온 수컷이 둥지 밖에서 날며 아기새들을 불러내고 있다.
③아기새들의 입 속에 벌레를 넣어주고 있다.
④둥지 안에 들어갔던 수컷이 아기새들의 배설물을 입에 문 채 둥지를 나서고 있다.
⑤뒷머리에만 붉은 깃이 달린 암컷이 벌레를 물고 와 아기새들을 부르고 있다.
⑥청설모 한마리가 까막딱따구리 둥지 주변 나뭇가지를 돌아다니고 있다.
⑦청설모가 떠난 뒤 수컷이 아기새들과 함께 자려고 둥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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