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폭스(47) 사이언스미디어센터 소장
사회 속 과학 소통의 현장 ⑥ 영국 사이언스미디어센터
피오나 폭스 소장 인터뷰
피오나 폭스 소장 인터뷰
정확한 과학지식 전달 목표
과학자 분야별로 DB화
신문·방송에 전문가 연결해줘
큰일 터졌을땐 브리핑 열기도 최근 들어 과학 기사가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구제역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 등이 이어졌다. 신문과 방송은 전문가 수준의 과학을 이야기하고, 대중들은 전문지식 습득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선정주의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처럼 철저한 검증 없이 성과가 부풀려지기도 하고, 공업용 우지 라면 파동처럼 사회가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과학 지식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설립된 ‘사이언스미디어센터’다. 지난 14일 런던 유스턴가의 사무실에서 피오나 폭스(47·사진) 사이언스미디어센터 소장을 만났다. -사이언스미디어센터는 어떻게 설립됐나? “2002년에 주요 과학 이슈가 언론에 논란이 되고 있었다. 엠엠아르(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을 한번에 접종하는 주사)과 광우병(BSE), 유전자조작식품(GMO) 등이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 지식이 미디어에 정확히 보도되지 않는다며 기관을 설립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지금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이나 ‘커피가 암을 줄인다’는 등 여러 ‘위험 보도’가 있지 않나?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한 과학 지식을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미디어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나? “과학자들을 분야별로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자신의 작업을 사회에 알리고 싶은 과학자들이 요구할 때도 명단에 넣는다. 신문·방송이 전문가 소개를 요청하면 연결해준다. 과학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큰일이 터졌을 때도 과학자들을 주선해 브리핑한다. 올해 초 후쿠시마 사고 때는 방사선 정보를 전달하고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미디어센터의 설립 계기가 된 엠엠아르 백신 문제는 한국인들에게 생소하다. “1998년 영국 과학자들이 의학전문지 <랜싯>에 엠엠아르 백신이 자폐와 연관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사실을 듣고 영국 사회는 뒤집어졌다. 미디어도 히스테리로 가득 찬 보도를 쏟아냈다. 이로 인해 엠엠아르 백신의 접종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홍역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현상도 겪어야 했다.” -당시 보도 양상이 어땠나? “언론 보도는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당신의 자식들도 엠엠아르 백신을 접종시켰냐’고 기자가 영국 총리에게 대뜸 물은 적도 있었다. 결국 2년 전, <랜싯>은 해당 논문의 결함을 발견하고 게재를 철회했다. 지금은 지역단체가 엠엠아르 백신 접종운동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엠엠아르 백신 건은 과학과 사회의 소통에서 ‘과학의 대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과학이 말하는 당대의 사실은 모두 진실’이라는 믿음은 착각일 때가 있다. 과학의 주장은 나중에 종종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50년대 임신부들에게 인기를 끌던 ‘입덧 방지용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는 나중에 기형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돼 충격을 줬다. 방사선의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에는 핵실험을 구경하러 미국 서부의 사막에 사람들이 몰려가기도 했다. -여하튼 <랜싯>은 저명한 의학전문지 아닌가? 그 정도에 게재됐다면 사전예방 측면에서 보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과학적 발견이므로 당연히 보도하는 게 맞다. 논문이 게재된 직후의 보도 양상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뒤 과학자들의 다양한 반론과 토론이 소개되는 대신, 일부 미디어를 중심으로 ‘어떤 연예인이 백신을 맞았냐’는 등 부차적인 것과 백신을 연관시키는 선정적인 보도가 그치지 않았다.” -어떤 지향의 전문가들을 미디어에게 연결해 주는가도 쟁점이 될 것 같다. 미디어센터의 중립성과 공정성도 논란거리일 것 같은데? “미디어센터에는 80곳이 자금을 대고 있다. 정부 부처인 기후변화에너지부와 과학자단체 그리고 신문·방송사, 의약업체와 화학업체를 비롯한 산업계 등 크게 네 그룹이다. 하지만 중립성 보장을 위해 어느 단체든 운영비의 5% 이상을 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실 7명의 인건비가 운영비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돈은 많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연결하는 과학자들도 공익 차원에서 무보수로 활동한다. 물론 저널이나 논문 발표와 인용 회수를 따져 소개하기 마련이어서 젊은 과학자보다는 경륜 있는 과학자들이 자주 나오는 게 사실이다.” 현재 영국 말고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 5개국에서 사이언스미디어센터가 활동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 과학자가 창설을 주도했거나 미디어나 정부 유관기관이 주도한 경우도 있다. 영국은 과학자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자신하고 있는 듯했다. -후쿠시마 사고 때 한국에선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하는 과학적 입장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영국도 후쿠시마 사태 초기에는 원자로의 노심용융 등이 관심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원자력 과학자 의견을 중심으로 전달됐다. 기술자들이니 아무래도 비판적인 의견이 적었다. 하지만 3주쯤 뒤엔 원자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이어졌다.” -미디어센터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점은? “최근엔 정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의 언론 자유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수행할 때 과학자들은 그에 반하는 연구나 의견을 언론에 제시하는 게 힘들지 않나?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런던/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공동기획 :
과학자 분야별로 DB화
신문·방송에 전문가 연결해줘
큰일 터졌을땐 브리핑 열기도 최근 들어 과학 기사가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구제역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미군기지 고엽제 매립 의혹 등이 이어졌다. 신문과 방송은 전문가 수준의 과학을 이야기하고, 대중들은 전문지식 습득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선정주의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처럼 철저한 검증 없이 성과가 부풀려지기도 하고, 공업용 우지 라면 파동처럼 사회가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과학 지식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설립된 ‘사이언스미디어센터’다. 지난 14일 런던 유스턴가의 사무실에서 피오나 폭스(47·사진) 사이언스미디어센터 소장을 만났다. -사이언스미디어센터는 어떻게 설립됐나? “2002년에 주요 과학 이슈가 언론에 논란이 되고 있었다. 엠엠아르(MMR) 백신(홍역·볼거리·풍진을 한번에 접종하는 주사)과 광우병(BSE), 유전자조작식품(GMO) 등이었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과학 지식이 미디어에 정확히 보도되지 않는다며 기관을 설립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지금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이나 ‘커피가 암을 줄인다’는 등 여러 ‘위험 보도’가 있지 않나?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가장 정확한 과학 지식을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미디어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나? “과학자들을 분야별로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자신의 작업을 사회에 알리고 싶은 과학자들이 요구할 때도 명단에 넣는다. 신문·방송이 전문가 소개를 요청하면 연결해준다. 과학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큰일이 터졌을 때도 과학자들을 주선해 브리핑한다. 올해 초 후쿠시마 사고 때는 방사선 정보를 전달하고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미디어센터의 설립 계기가 된 엠엠아르 백신 문제는 한국인들에게 생소하다. “1998년 영국 과학자들이 의학전문지 <랜싯>에 엠엠아르 백신이 자폐와 연관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사실을 듣고 영국 사회는 뒤집어졌다. 미디어도 히스테리로 가득 찬 보도를 쏟아냈다. 이로 인해 엠엠아르 백신의 접종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홍역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현상도 겪어야 했다.” -당시 보도 양상이 어땠나? “언론 보도는 꼬리를 물면서 이어졌다. ‘당신의 자식들도 엠엠아르 백신을 접종시켰냐’고 기자가 영국 총리에게 대뜸 물은 적도 있었다. 결국 2년 전, <랜싯>은 해당 논문의 결함을 발견하고 게재를 철회했다. 지금은 지역단체가 엠엠아르 백신 접종운동을 벌이고 있을 정도다. 엠엠아르 백신 건은 과학과 사회의 소통에서 ‘과학의 대실패’로 기록될 만하다.” ‘과학이 말하는 당대의 사실은 모두 진실’이라는 믿음은 착각일 때가 있다. 과학의 주장은 나중에 종종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50년대 임신부들에게 인기를 끌던 ‘입덧 방지용 수면제’인 탈리도마이드는 나중에 기형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돼 충격을 줬다. 방사선의 위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던 20세기 초반에는 핵실험을 구경하러 미국 서부의 사막에 사람들이 몰려가기도 했다. -여하튼 <랜싯>은 저명한 의학전문지 아닌가? 그 정도에 게재됐다면 사전예방 측면에서 보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과학적 발견이므로 당연히 보도하는 게 맞다. 논문이 게재된 직후의 보도 양상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뒤 과학자들의 다양한 반론과 토론이 소개되는 대신, 일부 미디어를 중심으로 ‘어떤 연예인이 백신을 맞았냐’는 등 부차적인 것과 백신을 연관시키는 선정적인 보도가 그치지 않았다.” -어떤 지향의 전문가들을 미디어에게 연결해 주는가도 쟁점이 될 것 같다. 미디어센터의 중립성과 공정성도 논란거리일 것 같은데? “미디어센터에는 80곳이 자금을 대고 있다. 정부 부처인 기후변화에너지부와 과학자단체 그리고 신문·방송사, 의약업체와 화학업체를 비롯한 산업계 등 크게 네 그룹이다. 하지만 중립성 보장을 위해 어느 단체든 운영비의 5% 이상을 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사실 7명의 인건비가 운영비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돈은 많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연결하는 과학자들도 공익 차원에서 무보수로 활동한다. 물론 저널이나 논문 발표와 인용 회수를 따져 소개하기 마련이어서 젊은 과학자보다는 경륜 있는 과학자들이 자주 나오는 게 사실이다.” 현재 영국 말고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 5개국에서 사이언스미디어센터가 활동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 과학자가 창설을 주도했거나 미디어나 정부 유관기관이 주도한 경우도 있다. 영국은 과학자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공정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자신하고 있는 듯했다. -후쿠시마 사고 때 한국에선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하는 과학적 입장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영국도 후쿠시마 사태 초기에는 원자로의 노심용융 등이 관심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원자력 과학자 의견을 중심으로 전달됐다. 기술자들이니 아무래도 비판적인 의견이 적었다. 하지만 3주쯤 뒤엔 원자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면서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이어졌다.” -미디어센터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점은? “최근엔 정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원의 언론 자유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수행할 때 과학자들은 그에 반하는 연구나 의견을 언론에 제시하는 게 힘들지 않나?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런던/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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