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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시한부 판정받고도 ‘석면 추방’ 불꽃 삶

등록 2011-12-22 20:44수정 2011-12-23 08:36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신규 석면광산 개발 반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아시아 시민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이정림씨가 학교와 집에서 석면에 노출됐다고 말하고 있다. 석면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한국은 석면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에서 수입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신규 석면광산 개발 반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아시아 시민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이정림씨가 학교와 집에서 석면에 노출됐다고 말하고 있다. 석면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한국은 석면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에서 수입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석면 질환 이정림씨 숨져
공장 주변 살았을뿐인데
2006년 느닷없이 암 발병
석면 퇴출에 남은삶 헌신
“용기있는 시민을 잃었다”
세계 활동가들 잇단 추도
지난해 12월 캐나다 퀘벡의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는 안경을 쓴 젊은 아주머니가 마스크를 쓰고 석면 생산 중단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다들 그가 캐나다에 가는 걸 만류했다. 남은 삶이 1년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에는 인도 자이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회의에도 나왔다. 항암치료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날아온 먼 길이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또렷한 외침은 전세계 석면 전문가들의 심금을 울렸다.

삶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살다 간 이정림씨가 21일 경북 김천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 사인은 석면 노출로 인한 악성중피종. 그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2006년 어느 날이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의사가 말했다. “이 병은 석면으로밖에 생기지 않습니다.”

석면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석면 공장에서 일한 적도 없고 아버지가 석면광산에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저 1981년부터 84년까지 대전시 오류동 벽산슬레이트 공장으로부터 3㎞ 떨어진 곳에서 집과 고등학교를 오갔고, 1991년부터 93년까지 1㎞ 떨어진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을 뿐이었다. 공장에서 날아온 석면 먼지가 그의 폐에 쌓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씨는 지난해 초부터 석면 추방운동에 뛰어들었다. 석면피해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 나섰고 아픈 몸에도 각종 기자회견과 국제회의를 소화했다.

대전의 벽산슬레이트 공장 문제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살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석면 질환을 겪고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0월 대전발전연구원 조사를 보면, 대전지역 5개 종합병원에서 악성중피종으로 판정된 환자만 37명에 이르렀다. 역학조사에서는 공장 1㎞ 반경 주민 1133명 가운데 11명이 석면 질환자로 확인됐다.

이씨 등의 노력으로 올해부터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돼 이씨 같은 ‘환경성 질환자’들이 국가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22일 한국환경공단 석면피해구제센터는 올해 240명(사망자 포함 352명)이 석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중 10분의 1인 22명이 인정받은 지 몇 달 만에 숨졌다. 올해 3월 석면 피해를 인정받은 이씨가 23번째 사망자다. 그래도 5년 이상을 버틴 이씨는 운이 좋은 셈이다. 홍석봉 석면피해구제센터 과장은 “악성중피종은 확인 뒤 1년 안에 숨지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숨지기 직전까지 이씨는 벽산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중이었다. 정부가 지원한 석면피해구제지원금 3000만원으로는 하루아침에 은행을 그만두고 시한부 삶을 살게 된 억울함을 풀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일 세계의 환경보건 활동가들은 “용기있는 시민을 잃었다”며 추도 메시지를 보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지원금이 산업재해 보상금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등 석면피해구제법에도 문제점이 있다”며 “올해 환경피해시민대회 환경보건시민상을 수상하고서 상을 받지 못하고 떠난 이씨가 아쉽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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