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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파리가 하는 일을 양미역취는 알고 있다

등록 2012-12-21 20:33수정 2012-12-21 20:55

양미역취에 성호르몬을 붙이는 파리 수컷. 식물은 그 냄새를 ‘맡고’ 방어체계를 구축한다.  이언 그레턴버거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양미역취에 성호르몬을 붙이는 파리 수컷. 식물은 그 냄새를 ‘맡고’ 방어체계를 구축한다. 이언 그레턴버거 <미국국립과학원회보> 제공
[토요판]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낫으로 풀을 베거나 잔디 깎는 기계로 작업하는 주변에 가면 풋풋한 풀 냄새가 진동한다. 단순히 풀이 잘린 상처에서 나는 냄새가 아님은, 그 냄새가 제법 멀리 퍼지는 휘발성 물질이란 데서 알 수 있다. 이미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이 식물이 내는 경계경보임을 알았다. 낫이든 칼날이든 식물을 해치는 초식동물의 이빨과 다를 게 없다. 풀 냄새가 우리에겐 상쾌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식물에겐 동료에게 조심하란 경계경보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긴급구조 신호일 수 있다.

동물처럼 도망치지 못하는 식물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천적을 쫓아낼 방책을 마련해 두고 있다. 단단한 껍질과 날카로운 가시, 독성물질을 만들어 동물과 맞선다. 교묘한 방어책을 구사하기도 한다. 휘발성 화학물질을 이용한 신호가 그 하나이다.

유럽에 분포하는 양배추의 일종인 흑겨자에는 독특한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포식자가 꺼린다. 그러나 이 양배추의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배추흰나비가 있다. 이런 전문적인 천적에 대응하는 전략이 있다. 바로 ‘흑기사’인 말벌을 부르는 것이다.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흑겨자를 물어뜯으면 흑겨자는 휘발성 물질을 분비하는데, 기생 말벌이 이 신호를 알아채고 달려와 애벌레를 공격한다.

식물의 화학신호는 자기 몸 안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몸의 한 부위가 공격을 당하면 거기서 신호물질이 나와 몸의 다른 부분이 대비하도록 했을 것이다. 개체 안의 신호가 개체 사이의 소통으로 이어지는 진화가 뒤를 이었다. 이웃 식물이 내는 경보 신호를 알아채고 미리 준비하는 능력을 갖춘 식물이 자연에서 선택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호를 역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기생 식물인 새삼은 숙주 식물이 내는 휘발성 물질을 향해 자라 나간다. 곤충이나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은 이웃 식물의 신호물질을 감지해 방어 물질을 분비하는 식물도 적지 않다.

이런 사례는 모두 식물이 내는 신호 물질을 식물이 감지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최근 곤충이 내는 신호 물질을 감지하는 식물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진은 양미역취라는 식물과 이 식물에만 알을 낳는 파리의 일종이 맺는 독특한 관계에 주목했다.

봄에 이 파리 수컷은 양미역취 잎에 특유의 화학물질을 발라놓는다. 이 물질은 곧이어 발생하는 암컷 파리를 유인하는 구실을 한다.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이 식물 줄기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데, 알에서 깬 애벌레는 식물에 혹병을 일으킨다.

혹병에 걸린 양미역취는 죽지는 않지만 씨앗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씨앗의 크기도 작아져 싹이 트는 비율이 줄어드는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식물은 앉아서 고스란히 당하지만은 않는다.

양미역취는 이 파리의 성적 유혹 물질을 ‘냄새 맡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 결과 파리의 페로몬에 노출된 양미역취는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파리의 산란 수가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고, 딱정벌레 등 다른 초식 곤충의 침입도 절반 이상 줄이는 효과를 봤다. 파리의 페로몬을 감지하고 나름의 방어체계를 작동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식물에게 ‘코’가 있을 리 없다. 화학물질을 어떤 메커니즘으로 감지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다른 식물도 이런 능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우리의 편견과 달리, 식물은 소통 전문가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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