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채취사업 탓 삶의 터전 사라져
모래채취사업 탓 삶의 터전 사라져
요즘 같이 더울 때면 어릴 적 고향 강가의 은모래 금모래로 된 넓은 백사장과 물이 야트막하게 흐르는 모습, 강 둑 위에는 키 큰 미루나무가 서있고 매미가 귀가 따갑도록 울어대는 전경의 추억이 아스라이 되살아난다. 그 물에서 물장구치며 물고기를 잡던 때가 그립다. 지금은 모래는 없어지고, 물은 오염되어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가 되었고, 미루나무 왕버들이 서있던 둑은 모두 블럭으로 덮여 그 위로 차들이 달리니 강은 이미 강이 아니다.
그런 강의 모래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물고기들 중에 모래무지보다는 크기가 훨씬 작고 입에 4쌍의 수염이 난 흰수마자라고 하는 물고기가 있다.
크기가 5~6cm 가량인 이 물고기의 자세한 생태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 주로 수서곤충의 유충을 먹고, 6월경에 산란하고, 바닥이 모래로 돼 있으면서 물살이 빠른 곳을 좋아하는 까다로운 성질을 지녔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이런 성질 때문에 같은 하천이라도 사는 장소가 넓지 않고, 바닥이 자갈로만 된 곳이나 물살이 느린 곳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물고기는 1935년에 일본 사람인 모리타메조에 의해 경북 영주의 내성천에서 처음 발견돼 신종으로 보고됐다. 내성천은 거의 하천 바닥 전체가 모래여서 흰수마자가 살기에 좋은 환경조건을 지니고 있다. 흰수마자는 처음 발견된 이후 수십년 간 낙동강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80년대 초반 금강과 임진강에서도 발견돼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그 이후 임진강과 금강의 서식처는 하천 오염과 개수공사, 모래채취 때문에 모두 훼손돼 지금은 그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흰수마자의 서식지는 대개 모래가 많은 하천 하류에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선호하는 주변 지역 개발이나 골재채취사업의 영향에 취약하다. 특히 인구밀집지역을 지나는 곳은 둔치를 만들어 주차장이나 체육·놀이 공간으로 이용하고, 물의 흐름을 쉽게 한다는 명목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관행처럼 되었다. 이런 행위들이 하천 바닥에 붙어사는 물고기들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하찮은 미물이라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개정된 멸종위기종의 목록에 오른 18종의 물고기 중 흰수마자를 비롯한 12종이 하천의 바닥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물고기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동안의 개발논리에 하천 바닥이 얼마나 큰 수난을 입어왔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채병수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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