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토요판]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지난 대통령 취임식 날 집을 떠나 청와대로 들어가는 대통령에게 동네 주민들이 새끼 백구 두 마리를 선물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강아지를 주고받는 사람들. 그런데 나는 이 흐뭇한 장면을 보면서 삐딱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유기동물 입양하겠다는 약속은 언제 지키는 거야?’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직전 ‘대통령이 되면 유기동물을 입양해서 청와대에서 살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이 보호소를 찾아가서 열악한 환경과 열흘 뒤 안락사당하는 유기동물의 현실을 본 뒤 입양한 동물(가능하면 잡종견)을 안고 보호소를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혼자 히죽거렸다. 그런데 이미 두 녀석이나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가니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까. 이 또한 공약(空約)이 되는 건가?
한국에서 동물보호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백구는 좀 특별한 견종이다. 백구를 비롯한 진돗개는 전통견이라고 대접을 받는 것 같지만 반려견과 식용견의 경계에 있다. 건물 한쪽에 묶인 채, 또는 평생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 채 뜬장에 갇혀 잡아먹히기 위해 키워지는 진돗개가 많다. 구조해도 공동주택 위주의 주거환경에서 입양이 어렵기 때문에 선뜻 구조도 힘들다. 그런 개들에게 최근 등장한 새로운 삶의 선택지가 해외 입양이다. 요 며칠 국내에서 가족을 찾지 못하고 해외 입양을 떠나는 백구와 누렁이 이야기를 여럿 접해서 그런지 화면 가득 보이는 백구를 둘러싼 사람들의 환한 웃음이 불편했다.
대통령이 유기동물을 입양한다고 했을 때 지켜지기를 바랐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리보다 반려동물 문화가 발달한 나라들도 대통령의 반려견인 퍼스트도그는 대부분 흔히 말하는 순종이다. 보호소에서 버려진 개를 입양하겠다고 밝혔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결국 지인에게 선물받은 순종을 데리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퍼스트도그는 무조건 순종이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니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일은 일찌감치 물 건너간 것이다.
외국의 경우 대통령이 반려인인 경우가 많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웰시테리어 찰리와 백악관 수영장에서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고, 쿠바 미사일 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된 순간에 집무실 한가운데서 찰리를 쓰다듬으며 앉아 있다가 마침내 대응방안을 결정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개를 싫어하는 대통령도 있었다. 트루먼은 선물받은 개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주치의가 관심을 보이자 홀랑 넘겨주었다. 그랬다가 언론의 질타와 항의가 이어지자 급하게 개 한 마리를 백악관에 다시 들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유기동물 입양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일단 환영했지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유기동물은 한번 버려져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태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청와대에 들어갔으니 배곯을 리 없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등 ‘관리’ 잘 받으며 살겠지만 넓은 뜰 한쪽에 묶여서 외롭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도 어린 시절 마당에 묶어 키우던 개를 예뻐했고, 어른들이 집을 비운 날이면 책을 들고 나가 녀석의 옆에서 읽으며 두려움을 잊었지만 커서 반려견을 들인 뒤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한 공간에서 일상을 나누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느낌. 그런 느낌을 공유해야 진정성 있는 동물정책들이 나올 텐데 아쉽다. 그래서 대통령의 침실에서 함께 잠들었다는 다른 나라 대통령의 반려견 이야기, 대관식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반려견 대시를 목욕시켰다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야기는 아직 우리에게 먼 이야기이다.
청와대로 들어간 백구 새끼들은 행복할까? 화면에 잡힌 불안한 눈빛의 새끼들이 많이 어려 보여서 애처로웠다. 어미젖은 떼었을까? 부디 사랑받으며 외롭지 않게 살기를. 그리고 이 녀석들 핑계로 유기동물 입양하겠다는 공약 ‘퉁치지’ 마시기를!
김보경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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