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봄 햇살을 맞으며 지인과 광화문을 돌아다녔다. 미국에 사는 친구는 한국 관련해서 <시엔엔>(CNN)에 계속 속보가 뜬다며 걱정을 했지만, 평일인데도 북적이는 미술관을 보니 남의 나라 일인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좋았던 햇살은 어디 가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4월에 어울리지 않게 요변을 떠는 날씨를 보며 “미사일 터지기 전에 지구 멸망해서 죽는 거 아냐?” 낄낄거렸다.
지인과 헤어져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총을 든(진짜 총이 아닐 수도 있다) 경찰들이 달려오더니 도열을 한다. 광화문광장 주변의 분위기는 일순 싸해졌다. “저거 진짜 총이야?” “북한이 미사일 발사했대?”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수군댔다. 순간적으로 공포가 밀려왔다. 계엄령 때였는지 어린 시절 광화문 앞에 탱크가 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 한동안 비상식량이랍시고 책상 서랍에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쟁여놓을 정도로 강렬한 공포였다. 동물 카페에서 비상 사료를 사재기해야 하느냐는 글을 보고 웃었는데 웃을 일이 아닌 건가?
언젠가 본 만화에서 일본 작가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피할지 고민한다. 반려인인 작가는 반려동물용으로 사료, 물, 그릇을 챙기고, 대피소가 추울지 모르니 옷과 모포를 챙긴다. 그러고는 이동장에 동물을 넣고 용품을 챙기고 집에서 뛰어나가는 진땀나는 대피 순서를 머릿속으로 모의실험 했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 사람들은 이런 것도 준비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대피소로 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재해시 대피소에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없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두고 떠나는 것을 거부하자 연방재난관리국이 대피소에 함께 갈 수 있도록 임시조처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연평도 사건 때 처음으로 동물단체가 재난지역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포탄에 맞아 죽거나 부상당한 동물을 구조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포격 당시 나는 신간 이벤트로 마련한 사료를 가득 싣고 사료업체 담당자와 유기동물 보호소로 가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담당자와 신나게 떠들다가 라디오를 통해 포격 소식을 듣고는 잠시 전쟁 공포를 느꼈지만 금세 잊고 이러다가 결혼 못하는 거 아니냐며 수다로 이어졌다. 여전히 전쟁은 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광화문에서 순간적으로 느낀 공포는 오래갔다. 대피도 상상해 봤지만 뚱뚱이 고양이와 밥 주는 길고양이 여럿을 데리고 대피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저 집에서 함께 살거나 혹은 죽거나. 서울에 살면서 전쟁을 겪은 엄마는 어땠을까.
“그때는 서울이래도 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우리 집은 돼지 몇 마리를 쳤는데 인민군이 자꾸 뺏어가니까 그럴 거면 아예 우리가 먹어 없애자고 해서 남자 어른들은 돼지 잡고, 여자들은 급하게 순대 만들던 기억이 생생한데….”
전쟁 얘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난데없는 순대 얘기라니. 일반인에게 전쟁은 사건이 아니라 고단한 삶일 뿐이구나. 전쟁 나면 개가 미친다고 먼저 죽여야 한다는 말도 들었단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청각 능력이 뛰어난 개이니 공포가 더하긴 할 것이다. 최근 동물 카페에서 전쟁 때 참고자료로 추천되는 미국 워싱턴주 비상관리국의 재난 시 반려동물 관리 지침에도 동물의 신경이 예민해질 수 있으니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주라고 나와 있다.
전쟁이 나면 사람도 동물도 다치고 죽고 떠돌 것이다. 동의도 없이 일으킨 전쟁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국가로부터 유기된 같은 처지가 되겠지. 속보로 뜨는 ‘즉각 도발’, ‘전쟁임박’ 같은 기사보다 ‘삼성 회장이 입국했으니 전쟁은 안 난대요’ 같은 실없는 말을 더 신뢰하고 싶은 겁 많은 소시민의 마음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하나. 피난 짐 싸두라는 부모님의 엄포에 고양이 캔을 싸다가 혼났다는 접경지역에 사는 분의 말에 웃고, 대비랍시고 외국의 재난 시 반려동물 대피법 자료를 찾아 놓고, 미군의 비전투원 후송 작전 지침에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며 사람이라고 절대 대피의 우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부러워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전쟁 공포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출판인
<한겨레 인기기사>
■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국방장관 협박 이메일
■ 죽은 지 10시간, 심장이 뛰다?
■ 특별히 부탁받았는데… 운명하셨습니다
■ MIT에서 총격 발생…1명 사망
■ 통쾌하다, 비정규직 미스김
■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국방장관 협박 이메일
■ 죽은 지 10시간, 심장이 뛰다?
■ 특별히 부탁받았는데… 운명하셨습니다
■ MIT에서 총격 발생…1명 사망
■ 통쾌하다, 비정규직 미스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