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법사위 거치며 크게 약화
화학물질 들어간 제품 만드는
사업자의 보고의무 삭제해버려
고체형태 때에는 사전신고 제외
매출 대비 과징금 조항도 빠져
“위험정보 교환체계 구멍” 지적
화학물질 들어간 제품 만드는
사업자의 보고의무 삭제해버려
고체형태 때에는 사전신고 제외
매출 대비 과징금 조항도 빠져
“위험정보 교환체계 구멍” 지적
잇따르는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불안감이 부쩍 높아진 가운데 화학물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두 가지 법률 제정이 곧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이 2007년 도입한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에 대응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안은 이미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화학물질 노출 피해 예방과 신속한 사고 대응을 목적으로 한 ‘화학물질관리법’(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안)은 중대 화학물질 사고를 낸 사업체에 부과할 과징금 규모 등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여야 합의만 남겨두고 있다.
2015년부터 이 두 법이 시행되면 국민들이 알게 모르게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줄어,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사고의 피해자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까? 이 질문엔 화평법의 입법을 주도한 의원조차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상정 의원(진보정의당)은 “화평법이 화학물질 안전성 평가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일부 부과하는 의미있는 진전을 이뤘지만 산업계의 반발로 후퇴된 것도 사실”이라며 “화평법의 애초 목표였던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고’ 예방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이 ‘후퇴’로 지적하는 것은 법안의 핵심 내용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며 크게 약화하는 방향으로 손질된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유해화학물질 노출을 줄이려면 정부가 국내에서 취급하고 있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화평법 심의 때 새로운 화학물질이나 기존 화학물질을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사용·판매하는 모든 사업자들에 취급 화학물질의 용도와 양 등을 매년 환경부에 보고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내용으로 의결했다. 하지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한 화평법에서는 화학물질의 사용자, 즉 제품 제조에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산업체의 보고 의무가 삭제됐다. 법제사법위원회가 과도한 규제라는 산업계의 반발과 산업부처의 반대를 수용한 결과다.
화학물질의 용도는 이를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결정하는데도, 화학물질 제조·수입·판매자에게만 보고 의무를 지운 것은 화학물질 관리의 효율보다는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직접 만드는 사용자(제조업체)의 편의를 우선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 속에서 화학물질의 용도에 대한 정확한 보고가 이뤄지려면, 화학물질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업체가 화학물질 제조·수입자 등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화학물질 사용자가 제조·수입자 등에게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한 환노위의 법 조항은, 제조·수입자가 요청할 경우에만 정보를 주도록 수정돼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은희 환경부 화학물질과장은 이와 관련해 “화학물질 사용자에게 보고 의무를 지우는 부분은 유통량 조사 등과 중복된다는 지적이 있어 빠진 것이다. 화학물질의 사용과 관련된 데이터는 해당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는 유통량 조사를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유통량 조사는 매년 하도록 의무화한 화평법상의 화학물질 제조·수입 등의 보고 조항과는 달리 4년 주기로 이뤄져왔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인 화학물질관리법이 통과돼도 조사 주기가 2년으로 당겨질 뿐이다. 화학물질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제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 노동자와 제품의 최종 소비자가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경로를 예상한 안전조처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해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체가 생산 제품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함량과 용도 등을 환경부에 사전 신고하도록 한 조항도 결정적으로 후퇴한 대목이다. 화학물질이 사용 과정에서 유출되지 않고 고체 형태로 기능을 발휘하는 경우는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가 법사위 심사과정에서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체나 액체 형태로 쓰이는 생활용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품이 정부의 사전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정남순 변호사는 “환노위가 화평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마련한, 화학물질 제조·수입자와 사용자 사이에 정보가 순환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최종 통과된 법에서 빠져버렸다”며 “화학물질 사용자가 화학물질 제조자에게 용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제조자는 그 용도에 맞춰 노출 위험을 평가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 순환이 이뤄지지 않고는 가습기 살균제 사고처럼 화학물질 사용자가 새로운 용도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사고는 걸러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들이 정부와 거래업체들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압박 수단으로 환노위에서 합의한 매출액 대비 과징금 부과 조항도 모두 삭제됐다. 화평법이 ‘발톱 빠진 호랑이’가 된 셈이다.
화평법 대표 발의자인 심상정 의원은 “화평법이 화학물질의 용도를 결정하는 사용자 대신에 판매자가 화학물질의 용도와 사용량을 보고하게 하는 기형적 구조가 되면서, 핵심인 ‘화학물질 위험정보 교환시스템’이 구축되지 못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화평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가습기 살균제 피해’ 성준이의 희망(한겨레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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