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수의사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서울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는 아는 동생이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가 강아지 한 마리 샀는데 예방접종을 자기가 해도 될 것 같다며 예방약을 살 수 없냐는 내용이었다. 몇 주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 강아지가 설사를 심하게 해서 동물병원에 갔더니 파보장염이라는데 자기가 치료하고 싶으니 누나가 어떤 항생제를 쓰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물었다. 나는 극도의 친절한 존댓말로 “○○씨, 부디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셔서 돈을 주고 치료를 받으시지요. 제가 ○○씨 병원에 가서 제 얼굴에 맞을 테니 보톡스 주사제를 팔라고 하면 주시겠습니까?”라고 몰아붙이고는 끊어버렸다.
한 동물병원 원장님은 강아지가 다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진단하자, 보호자가 자신이 외과의사라며 자기의 개를 직접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원장님이 안 된다고 했더니, 자기가 전문의인데 오히려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얘기에 수술하는 데 참관하도록 했다고 했다. 다리 한쪽 수술을 마친 뒤 보호자에게 해보시라고 했더니 한참을 낑낑거리더니 못하겠다며 “동물 수술이 생각보다 어렵네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 병원 15명 직원 중 유일한 ‘남자’로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이돌’ 인턴은 요즘 고민이 많다. 아이들의 죽음을 겪어보니 오랜 세월 자신이 진료하며 정들었던 나이 든 환자를 떠나보낼 때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 된다는 것. 또한 자기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죽게 되는 경우가 생길까봐 두렵다고 한다. 모든 과목을 다 알아야 하는데다 우리가 상대하는 환자는 말도 안 통하는데 혹여 잘못 진단해서 더 힘들게 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턴 월급이라야 쥐꼬리만하고 맨날 새벽까지 일하면서도 동물이 좋아 행복했는데, 지금은 가끔씩 두려워진다는 ‘아이돌’을 보며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혈관 카테터를 잡기 위해 바늘로 찌르는 것도 아플까봐 주저하며 울먹였던 나의 까마득한 인턴 시절을. 대학병원에 온 동물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구석에 처박혀 울던 인턴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실제로 많은 수의사들은 우리의 ‘아이돌’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 동물을 좋아해 이 일을 선택한 사람일수록 고민도 두려움도 크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살리고 싶은 마음도 커질 것이고, 살리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경험하며 단단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의사는 피부과, 내과, 일반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치과, 산부인과를 비롯해 내분비, 신장, 소화기, 종양도 다 알아야 한다. 공부를 해도 끝이 없고 벅차고 힘들 때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의사보다 동물의사가 한 수 아래일 거라 생각하는 선입견에 무시받을 때는 울컥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이럴 줄 알았으면 의대를 갈걸 그랬어. 사람의사는 진료과목이 한 가지니까 자기 과목만 열심히 하면 되잖아. 그리고 환자가 짜증 난다고 의사를 물거나 할퀴지는 않을 테니!” 하며 투정한다.
그런데 난 다시 태어나도 수의사를 할 것 같다. 사람의사만큼 대접도 못 받고 수입도 적지만 비교가 안 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갑다고 달려와 미친 듯 뽀뽀하는 환자도, 피 뽑는다고 안겨서 팔을 물어뜯는 환자도, 뭘 한 것도 없는데 대뜸 할퀴는 환자도, 내 진료실 컴퓨터에 오줌을 분출하는 사이코 환자도,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루 종일 쫓아다니는 스토커 환자도 사람의사라면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매일매일이 드라마, 시트콤 같지만 수의사니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 인턴과 ‘고민하는’ 모든 임상수의사들이여 파이팅!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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