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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크릴·이빨고기 남획에 원시바다 먹이사슬 흔들리나

등록 2013-07-23 20:31수정 2013-07-24 17:56

남극 대륙을 상징하는 새인 황제펭귄 무리가 남극의 한 얼음 절벽 아래를 걸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남극해보존연대 제공
남극 대륙을 상징하는 새인 황제펭귄 무리가 남극의 한 얼음 절벽 아래를 걸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남극해보존연대 제공
[지구와 환경] 남극 로스해를 지켜라
푸른빛 감도는 거대한 빙산 끝자락에서 종종걸음치는 펭귄들, 바닷가 얼음판 끝에 무리지어 있는 바다표범들, 먹잇감을 공격할 틈을 노리며 이들 주변을 떠도는 범고래, 다른 새의 알을 노리는 도둑갈매기. 북반구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남극은 오랫동안 영하 수십도까지 내려가는 극한 상황에 적응한 소수의 생물종만 살아가는 메마른 세계로 그려졌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실제 남극은 이들 이외에도 2만종 이상의 생물종이 서식할 것으로 추정되는 생명의 세계로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실제 남극해에는 열대 해역보다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도 있다. 영국의 남극 조사팀과 독일 함부르크대 과학자들이 남극해에서는 처음으로 남오크니제도와 그 주변 바다의 생물종을 집중 조사해 2008년 11월 <생물지리학 저널>에 보고한 결과를 보면, 남오크니제도와 주변 바다에서는 알려진 생물만 1200종 이상이 서식한다. 생물종수로는 열대 해역의 갈라파고스제도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남극해 가운데서도 환경단체들이 지구의 마지막 원시 바다로 부를 정도로 인간의 영향을 적게 받은 남극해 생태계의 핵심 지역이 로스해다. 로스해는 남극해 보전을 위한 전세계 환경단체들의 연합체인 남극해보존연대(AOA)가 2011년 10월 남극해에 설정하자고 제안한 19개 해양보호구역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 보호돼야 할 지역으로 손꼽는 곳이기도 하다.

뉴질랜드 아래쪽 남극 대륙 깊숙이 들어가 있는 로스해는 면적으로 보면 남극해 전체의 2%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극해보존연대가 지난해 발표한 ‘남극 주변 해역 및 로스해 보호를 위한 비전’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 개체군의 각 38%와 26% 이상, 전세계 남극바다제비 개체군의 30% 이상, 남태평양 웨델해표의 45% 이상을 부양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해역에 비해 이빨고기와 같은 대형 어류와 고래 등 상위 포식자들이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생물다양성과 훼손되지 않은 생태계로 설명된다.

로스해를 포함한 남극해는 극한 환경에서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만큼 외부의 개입에 의한 훼손에도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근 남극해 생태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요인으로는 남극 생태계 먹이사슬의 기초가 되는 크릴과 최상위 포식자인 이빨고기를 상대로 집중되는 어획 활동이 꼽힌다.

인간의 발이 닿지 않았던 남극해
2만종 이상 생물종이 서식한다
이곳 생물들의 먹이원인 크릴
최상위 포식자 격인 이빨고기
무분별 어획이 생태계 위협한다

미국 등 나서 보호구역 제안했지만
해양 자원 노린 러시아 등 반대에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로스해에 많이 서식하는 게잡이 바다표범.
로스해에 많이 서식하는 게잡이 바다표범.
국내에서 남극해 보호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 온 남극환경포럼의 제종길 위원장(해양학 박사)은 “남극은 대부분의 생물이 먹이원을 크릴에 의존하면서 단순한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단순한 생태계 구조에서 특정한 생물종을 집중적으로 잡아내는 것은 그 생물이 지닌 생태계 조절 기능을 사라지게 만들어 생태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한 번 왜곡된 생태계는 다시 회복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로스해에 많이 서식하는 크릴.
로스해에 많이 서식하는 크릴.
로스해가 특히 칠레농어 또는 메로라고 불리는 이빨고기의 주어장이라는 점은 로스해의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빨고기에 대해서는 성어가 되는 데 17년이나 걸릴 정도로 더디게 자라고, 수명이 50년에 이른다는 정도의 단편적 정보만 알려져 있다. 이처럼 더딘 성장 속도와 긴 수명은 남획의 위협에 특히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들은 로스해를 포함한 남극해에서 구체적인 생활사와 개체군 규모도 모르는 이빨고기를 해마다 1만t가량씩 잡아내고 있다.

남극해보존연대는 “로스해의 가장 독특한 점 하나는 대형 어류, 조류, 고래 등을 포함해 손상되지 않은 최상위 포식자 그룹이 서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해는 지구상에서 인간의 영향이 가장 적은 해양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영향, 해양 생물의 진화, 미교란 상태 생태계 연구의 자연 실험실이 될 수 있다”며 로스해 해역 360만㎢에 대한 보호구역 설정을 요구해 왔다.

국제 사회의 로스해 보전 논의는 유럽연합(EU)을 포함한 25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전위원회(CCAMLR)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지난 15~16일 독일 브레머하펜에서 열린 남극해양생물자원보전위원회 특별회의는 남극해 보존 운동을 펼쳐온 환경단체들로부터 세계 최대 해양보호구역 탄생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지난해 10월 정기회의에서 각자 별도의 보호구역안을 내놨던 미국과 뉴질랜드는 로스해 일대 227만㎢를 보호구역을 지정하자는 단일안을 제출해 기대를 높였다. 180만㎢에서 50년간 조업을 전면 금지하고, 47만㎢를 산란보호구역과 특별조사구역으로 설정해 조업을 제한하자는 안이다. 합의만 된다면 한반도 면적의 10배가 넘은 해양보호구역이 탄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남극 최대 크릴 어획국인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는 러시아의 노골적인 반대로 보호구역 지정 논의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오는 10월 정기회의를 기약해야 하게 됐다.

이번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외교부 국제법규과 서영민 서기관은 “러시아가 전에는 하지 않던 보호구역 지정의 법적 정당성 문제를 갑작스럽게 들고나오면서 세부적인 문제는 논의도 이뤄지지 못했다”며 “10월 회의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느냐는 보호구역 지정안 제출국인 미국과 뉴질랜드와 러시아 사이의 사전 조율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한국은 남극해 생태계 위협국

어획량 세계 2위로 집중 표적
정부, 보호구역 지정에 고심중

남극해에서 조업중인 어선 위로 잡혀 올라온 이빨고기의 모습. 남극해보존연대 제공
남극해에서 조업중인 어선 위로 잡혀 올라온 이빨고기의 모습. 남극해보존연대 제공
남극해 보호구역 지정은 우리나라와 직접 연결되는 문제다. 남극해 보호운동을 펴는 국제 환경단체들로부터 남극해 생태계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남극해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아 들이는 나라로 꼽힌다. 해양수산부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수산업체 어선들은 2011~2012년 어획기 동안 남극해에서 1097t의 이빨고기를 잡아냈다. 3개 원양업체 어선 6척이 남극해에서 올린 이 어획량은 같은 기간 전세계 남극해 이빨고기 어획량 1만421t의 10%에 이른다. 크릴 어획 비중은 14.8%로 더 높다.

우리나라가 국제 환경단체들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수산업체들의 이빨고기 조업 주어장이 로스해에 있는데다 우리나라 어선들이 종종 불법어업을 해 문제를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남극해보존연대(AOA)는 지난해 ‘남극 주변 해역 및 로스해 보호를 위한 비전’ 한국어판 보고서에서 “한국은 남극 지역을 향한 연구를 확장하기 위해서 많은 자원을 투자하면서도, 원양어업 관리에 있어서는 낡고 열악한 상태로 관리되는 어선, 불법조업 및 국제 법규를 위반하는 회사들을 가진 국가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로스해의 보호구역 지정은 로스해 어획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수산업체들에는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지난해 보호구역 설정을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세부 내용을 수산업계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원양산업과 방종화 사무관은 “로스해 보호구역이 지정되면 우리 어선들의 로스해 어획량의 50%, 남극해 어획량 30%가량이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분석돼, 보호구역의 범위와 조업시기 등에 대한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박숙현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내년에 생물다양성협약 총회를 주최하고, 로스해와 접한 지역에 남극기지인 장보고 기지를 건설하는 점을 고려해서도 보호구역 지정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지구와 환경] 환경 이야기

바다로 녹아든 이산화탄소, 크릴 죽인다

남극해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은 작은 새우처럼 생긴 갑각류 크릴이다. 물고기뿐 아니라 펭귄과 고래까지도 얼음 밑에서 미생물을 먹고 자라는 크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크릴 개체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남극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셈이다.

장기적으로 크릴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어 남극 전체 생태계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따른 바닷물의 산성화다. 인간이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대기로 방출한 이산화탄소의 3분의 1가량은 바다로 흡수된다. 바다로 녹아든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의 수소이온농도(pH)를 떨어뜨려 바닷물을 점점 산성으로 만든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지구 해양은 30%가량 더 산성화된 것으로 분석됐다.

바닷물 산성화는 석회질로 구성된 바닷물 속 일부 유기체들의 생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이들의 껍질과 골격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속도로 온실가스 농도가 증가해 바닷물이 계속 산성화되면 앞으로 20년 이내에 석회질 껍질을 지닌 작은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껍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상한다. 해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기초인 동물성 플랑크톤들이 껍질을 만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지구 해양 생태계에 재앙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들은 최근 학술지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에 실은 논문에서, 인류가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해 바닷물을 산성화시키면 이번 세기 말까지 남극해 크릴 새끼 절반가량의 생존이 어렵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를 지속할 경우 2300년까지 크릴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놨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알에서 부화한 크릴 새끼의 생존율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250ppm에 도달할 때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1500ppm이 됐을 때는 30%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1750ppm을 넘어선 뒤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릴 새끼는 어미가 낳은 알이 바닷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동안 알에서 발달해 부화돼 나온다. 산란에서 부화까지 일주일 남짓 걸리는 동안 알은 바닷속 700~1000m 깊이까지 도달한다. 이 지점에서 부화돼 나온 새끼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에너지만으로 먹이가 있는 해수면 근처까지 헤엄쳐 가야 한다. 산성화는 크릴 알이 부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 발달하는 속도를 늦추는 쪽으로 작용한다. 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살기 위해 헤엄쳐야 할 거리를 점점 길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얕은 곳에 도달하기 전에 에너지가 소진된 크릴 새끼들은 사멸할 수밖에 없다.

크릴과 남극 생태계에 안타까운 것은 바닷물이 차가울수록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게 유지돼 산성화 피해에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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