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환경] 환경 이야기
예상했던 대로 그들이 바르샤바로 가져온 가방 속에 이렇다 할 카드는 들어 있지 않았다. 퇴장과 철수, 상호 비난 등으로 얼룩진 회의였지만 190여개국 대표단들이 결정문에 도장은 찍었으니 파국은 피한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2015년 새로운 기후 체제에 합의해야 하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열릴 ‘파리로 가는 길’은 더 불투명해졌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해소되길 기대했던 주요 쟁점의 하나인 온실가스 감축 책임 분담과 관련해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약’(commitment)한다는 표현 대신 ‘기여’(contribution)한다는 애매한 결정문이 나온 것은 2011년 더반 플랫폼에서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연합은 새 기후 체제의 법적 구속력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법적 체제(legal instrument)를 가진 의정서’라는 구절을 넣으려 했지만 ‘법적 결과물(legal outcome)로서의 의정서’를 고집하는 인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야 했다. 결국 ‘법적 효력을 가진 합의 결과물’(agreed outcome with legal force)이라는 타협적 표현으로 봉합됐지만, 이 표현이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또다른 쟁점인 녹색기후기금(GCF)도 여전히 신기루에 가깝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1000억달러를 누가 얼마나 내놓을 것인지 구체적인 결정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새롭고 추가적인 재원’에 대한 해석과 조달 방식은 불씨로 남겨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기후현상과 해수면 상승 등의 피해 구제를 위한 ‘손실과 피해’ 대응도 기존 적응체제 아래서 시작하되 3년마다 효과를 평가하는 것을 전제로 한 ‘바르샤바 메커니즘’으로 타협됐지만, 재원 조달과 관련해선 마찬가지로 어떤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총회는 산림 분야에서 2억8000만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과 평가방법론, 운영조직 설립, 재정지원 방안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는 등 성과도 일부 남겼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후변화협상의 역사에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더반 플랫폼 합의 이후 2년이 흘렀지만 2015년까지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와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르샤바 당사국총회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했다. 지난 9월27일 발표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제5차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내에서 억제하려면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이 1조t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배출 추세를 유지할 경우 이 수치는 2040년 11월25일에 도달하게 된다. 해야 할 숙제를 뒤로 미룰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주 화요일 바르샤바 총회장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연과 협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2035년까지 에너지 수요를 엄청나게 부풀린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부터 바로잡는 일이 아닐까.
바르샤바/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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