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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라고? 당신과 감정을 나눌 수도 있어

등록 2013-12-13 19:57수정 2013-12-14 11:21

[토요판] 인간과 동물의 관계
인류는 동물과 함께 진화해왔다. 사냥에서 사육으로 삶의 변화는 동물을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동물은 노동력이나 운송수단으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경마나 투견, 서커스 등 ‘놀이’에도 동원됐다.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은 동물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마우스 등 실험동물의 ‘희생’은 신약 발명의 필수조건으로 인식된다.

동물은 자연에서 사는 야생동물과 농장에서 사육되는 경제동물,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 등으로 구분된다. 근대 이후 동물원에 사는 전시동물과 실험동물도 출현했다. 같은 종이지만 산속에 사는 들개와 집 안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반려견, 그리고 연구실에서 신약을 투입당하다 죽는 실험용 개의 ‘삶의 차이’는 오히려 다른 종인 들개와 고래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처음 급변한 것은 빙하기 직후다. 1만2000년 전 지구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을 통해 동물을 만나왔다. 사냥꾼들은 동물을 자신과 대등하거나 더 높은 존재로 여겼다. 바위에 동물 그림을 그리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 종교 행위를 통해 동물을 더 많이 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빙하기가 끝나고 농업을 하며 정착생활을 시작한 인간은 야생동물을 붙잡아 길들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처음 사육한 동물은 늑대였다. ‘카니스 루푸스’라는 사육 늑대가 오늘날 개의 조상이다. 얼마 뒤부터는 양과 염소를 기르기 시작했고, 9000년 전에는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했다. 말, 당나귀, 낙타, 물소, 가금류가 뒤이어 가축화되었다. 3000~4000년 전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애완동물로 고양이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라마, 알파카, 칠면조, 기니피그 등의 동물을 가축으로 삼았다.

동물은 자연에 사는 야생동물과
농장에서 사육되는 경제동물,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로 구분
야성을 숨기고 가축으로 사는
동물원 동물은 새로운 종이다

지배·피지배, 주인·소유물의
상하관계로 수천 년 살아왔지만
동물도 지성과 감성이 있다는
20세기 중반 이후 연구결과는
관계의 변화를 요구한다

기원전 4000년 무렵에는 오늘날 인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의 가축화가 모두 끝났다. 오랫동안 자유가 속박된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적응하며 유전자가 개량화된 동물. 가축은 당시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동물’이었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피지배와 지배, 소유물과 주인으로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근대 과학이 주류 세계관으로 자리잡으면서, 동물은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 시대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동물의 인지능력과 감정은 전적으로 무시됐다. 서양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동물은 ‘움직이는 기계’로 어떠한 도덕적 지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을 해명하는 철학적 시도는 동물과 비교함으로써 이뤄졌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동물보다 우월한 지구의 중심 존재로 정의됐다. 이런 데카르트적 시각은 최근 들어 ‘종차별주의’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동물원의 기원은 로마제국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제국은 새로운 곳을 정복할 때마다 그 지역의 동물을 잡아 전시했다. 또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한 장면처럼 동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의 싸움과 죽음을 오락으로 소비했다. 전시와 쇼의 전통은 동물원의 설립으로 계승됐다. 17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왕립동물원(메나주리·개인 동물원)을 열어 통치권력의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동물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권세가와 자본가가 동물을 수집·전시하는 동물원의 출현은 동물과 인간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공고히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동물도 지성과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됐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유인원이나 돌고래는 고유한 언어를 갖고 의사소통을 하고 이들보다 하등한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인간과 동물의 기나긴 역사에서 인간은 최근에야 동물을 친구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 개념이 정착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동물원에 가면 어른이나 아이나 정신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인공적인 구조물이 부자연스럽긴 해도 동물의 육체 자체가 뿜어내는 아름다움과 위엄, 경이로움이 감정을 자극한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3년 이상 동물원의 사육사로 일하며 사자, 돌고래, 원숭이 등을 관리해온 한 전직 사육사는 동물과의 교감을 묻는 질문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돌보는 동물이 아플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도 퇴근을 못 하고 계속 살펴보게 돼요. 동물이랑 저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제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원숭이가 있었어요. 제가 다가가면 쳐다도 안 봐요. ‘어, 이놈 봐라’ 싶은 거죠. 사랑을 주고받는 만큼 교감이 되는 존재가 동물인 것 같습니다.”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전시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많은 동물원들이 동물의 행태와 습성을 고려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서식지와 유사한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등 관람객 중심에서 동물 중심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지구에서 야생이 사라져버린 현재 동물원의 모든 동물을 당장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기는 어렵다. 동물원의 동물은 야생의 본성을 숨긴 채 가축처럼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종’은 아닐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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