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이야기
한국의 젊은 연구자가 빙하기-간빙기 순환과 관련된 북반구와 남반구 중위도 지역의 상반된 기후변화 패턴을 규명한 연구로 고기후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열대 지역 강수량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상반된 변화 경향을 보인다는 이른바 ‘북반구와 남반구 간의 수리학적 시소현상’이 지난 55만년 동안 온대 지역에도 나타났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조경남 박사가 이 연구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캄캄한 동굴 속이다. 그는 국내의 200여개 동굴을 탐사하며 동굴 생성물 시료를 떼어 분석했다. 석회암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자라는 종유석과 석순은 과거 기후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하드디스크’로 불린다. 세로로 잘라 동위원소 분석을 하면 생성 연대와 당시 기온을 알아낼 수 있어서다.
조 박사가 주도한 이 연구 결과는 4일 국제 과학저널인 <네이처>에 실린다. 관련 학계에서는 국내 과학자가 주도한 지질 분야 기후변화 연구 논문이 <네이처>에 실리기는 처음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과학자가 제1저자인 지질 분야 기후변화 연구 논문이 2014년에야 처음으로 <네이처>에 실린다는 소식은 어쩌면 한국 사회로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소식인지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 이룬 과학자의 성취는 과학자의 노력과 그 과학자가 활동하는 사회의 관심과 지원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기후변화 논의의 기초자료를 제공해온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3월31일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의 ‘기후변화 영향·적응·취약성’ 부문 보고서도 비슷한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이 보고서 앞에는 초안 작성에 무보수로 참여한 30개국 70여명의 과학자 명단이 실려 있다. 나라별로 보면 미국이 18명으로 가장 많고, 일본에서 3명, 중국과 인도에서는 각 2명씩 참여했다. 그러나 한국은 30개국 70여명의 전문가 그룹에 끼지 못했다. 국격은 올림픽 메달 수만이 아니라 한 권의 국제 공동보고서에도 담겨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자고 방파제를 높이 쌓는 일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기후변화의 메커니즘을 좀더 잘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도 시급하다. 여기서 문제는, 둑의 혜택은 둑으로 보호되는 곳에 온전히 떨어지지만 온실가스 감축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혜택이 세계에 고루 나눠진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 분야 과학 연구도 비슷하다. 성취의 영예는 과학자의 것이지만, 그 지식은 모든 인류의 것이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 나라나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무임승차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는 이런 유혹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듯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협력금제나 배출권거래제가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산업계 반대로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김정수 선임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