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중순 태풍 산바가 지나갈 때 양식장 스티로폼 부자에서 부서져 나온 미세 플라스틱이 경남 통영시 인평동 민양마을 북신만해상공원 앞바다를 눈처럼 하얗게 뒤덮고 있다. 이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수거되지 않아 파도에 쓸려 먼바다로 모두 흩어졌다. 이종호, 동아시아 바다 공동체 오션 제공
[지구와 환경] 미세 플라스틱
바닷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무기물질의 ‘칵테일’이다. 해저 지각에서 녹아 나온 물질, 육지에서 바람에 날리거나 강물을 타고 흘러든 온갖 물질이 모두 섞여 있어서다. 과학을 무기로 지구의 모습을 바꿔온 인간은 지표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의 구성 성분까지 바꿔놓았다. 인류는 지난 수십년 사이에 ‘마이크로 플라스틱(미세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대량으로 섞어 넣었다. 그 결과 지금의 바닷물은 과거와 전혀 다른 바닷물이 됐다.
‘미세 플라스틱’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크기에서부터 최대 길이 1~5㎜까지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인데, 이제 지구 모든 곳의 바닷물에서 발견된다.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영국 플리머스대의 리처드 톰슨 교수와 영국 엑서터대 스테퍼니 라이트 교수 등이 지난해 2월 국제 과학저널 <환경오염>에 함께 실은 리뷰 논문을 보면, 한국 주변까지 순환하는 해류인 북태평양 아열대 순환류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1ℓ에 최대 0.25㎎꼴로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희귀원소인 알루미늄·구리·은·금·인·몰리브덴·주석·납·수은·안티몬 등을 모두 합한 것보다 100배 이상 높은 함량이다. 국내의 대표적 미세 플라스틱 연구자인 심원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장은 “미세 플라스틱은 세계 어느 바다를 조사해도 나온다. 많은 곳은 동물 플랑크톤의 양과 비슷한 수준인 곳도 있다”고 말한다.
해양 미세 플라스틱 오염원으로 최근 주목받는 것은 각질 제거나 세정, 연마 등의 기능을 위해 화장품이나 스크럽제, 치약 같은 생활용품에 넣는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들이다. 이 알갱이들은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바다로 그대로 흘러든다. 생활용품 속 미세 플라스틱 추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미국의 환경단체 ‘파이브 자이어스’(5Gyres)가 조사한 것을 보면, 이런 제품 가운데는 지름 500㎛ 이하의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많게는 수십만개까지 들어 있는 것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 떠다니는 다양한 플라스틱계 쓰레기가 풍화 작용과 자외선에 의한 광화학 반응으로 부서져 만들어지기도 한다. 따져 보면 이런 2차 미세 플라스틱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합성섬유 옷을 세탁기에 넣어 돌릴 때 떨어져 나오는 미세한 섬유 부스러기도 주요 발생원으로 지목된다.
수십년 섞여든 플라스틱 조각
수산물 내장에서 잇따라 검출 한국 해역 오염 세계 최고 수준
작을수록 먹이사슬 이동 쉬워
인체 도달 가능성도 배제 못해
미세 플라스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해양 쓰레기와 관련한 사람들의 관심은 버려진 그물과 낚싯줄에 걸리거나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이로 잘못 알고 삼켰다가 소화기관이 막혀 죽어가는 해양 생물들의 불행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200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톰슨 플리머스대 교수는 ‘바다에서 사라지다:플라스틱은 모두 어디 있나’란 제목의 논문에서 플라스틱이 바닷속에서 미세 플라스틱 형태로 19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고 보고했다. 그 뒤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규명하려는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다.
해양 생물들이 먹이로 잘못 알고 먹거나, 물과 함께 체내로 빨려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은 생물체에 포만감을 줘서 영양 섭취를 저해할 수 있다. 체내 장기의 좁은 부분에 걸려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난연제·가소제·열안정제·자외선차단제 등의 플라스틱 첨가제에 함유된 잔류성 유기오염물질(POPs)과 중금속 성분은 체내에 축적돼 생물체의 성장을 저해하거나 생식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생물학 분야 유명 저널인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동시에 실린 영국 플리머스대와 엑서터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가 높은 곳에 사는 갯지렁이들은 먹이를 덜 먹게 될 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과 함께 체내로 들어온 유해 화학물질 탓에 건강이 나빠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 플라스틱이 인간에게도 위협이 될지를 두고는 과학자들도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 단장은 “결국 미세 플라스틱의 크기 문제”라고 짚었다. 생물체의 소화기관에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이 세포막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크면, 생물체의 위나 내장 속에만 머물다 배설될 것이다. 하지만 세포막을 통과할 정도로 충분히 작으면 세포에 흡수돼 축적될 수 있다. 미세 플라스틱이 생물체 체내에 축적된다면,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까지 전달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심 단장은 “플라스틱이 마이크로(100만분의 1m) 크기보다 더 작게 쪼개질 수 있다는 걸 연구자들 대부분이 예상하지만 아직 이를 증명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 실험실에서 양식장 부자로 사용되는 스티로폼을 조금 세게 풍화를 시켰더니 나노(10억분의 1m) 크기까지 쪼개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만약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가운데) 나노 입자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밝혀지면 (미세 플라스틱 문제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노 입자는 생체에서 주요 장기는 물론 뇌 속까지 침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외에서는 물고기·홍합·굴·바닷가재 등 다양한 수산물의 내장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열린 관련 전문가 국제 워크숍에선 북해산 새우의 조직에서 합성섬유를 분리했다는 벨기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통째 먹는 작은 물고기나 조개류를 즐기는 이들은 수산물의 체내에서 미처 배출되지 못한 플라스틱 조각까지 함께 섭취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한국의 남해 연안 바닷물 속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이 조사한 것을 보면, 거제도 해역 바닷물 1㎥에는 평균 21만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들어 있다. 같은 방법으로 조사한 싱가포르 해역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평균(2000개) 보다 100배 넘게 많은 것이다. 남해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양식장 등에서 대량 사용되는 스티로폼 부자(부이)다. 스티로폼은 다른 플라스틱보다 잘 깨지고 더 잘게 부서진다. 62ℓ짜리 스티로폼 부자가 2.5㎜ 크기까지 모두 깨지면 760만 조각이 되고,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더 쪼개지면 조각 수는 수천조 개까지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의 바닷물 속 미세 플라스틱 오염 실태가 심각하지만, 우리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나 조개 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발견한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어느 연구기관도 그런 목적의 조사를 시도해보지 않은 탓이다.
심 단장은 “유럽에서는 미세 플라스틱이 수산물의 안전성 등에 끼칠 영향을 두고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수산물에 대한 민감도가 워낙 높아 조사를 미뤄놓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세 플라스틱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도 안 돼 아직 심각성과 관련해 말하기 어렵지만, 우려할 순간이 되면 이미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예방적 관점에서 좀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수산물 내장에서 잇따라 검출 한국 해역 오염 세계 최고 수준
작을수록 먹이사슬 이동 쉬워
인체 도달 가능성도 배제 못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인 줄 알고 먹은 요각류 동물성 플랑크톤들의 모습. 형광색으로 처리한 것이 미세 플라스틱이다. <인바이런먼틀 사이언스·테크놀로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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