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제13회 전북 김제 지평선축제 때 참가자들이 논에서 메뚜기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김제시 제공
동종포식 이론, 숫자 임계설, 호르몬 작용설 등 다양
개미, 꿀벌, 벌거숭이 두더지쥐처럼 고도의 조직화된 사회적 행동을 하는 진사회성 동물들은 무리지어 산다. 진사회성 동물이 아닌 메뚜기는 왜 떼지어 사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동종포식 이론, 숫자 임계설, 호르몬 작용설 등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다.
동종포식 이론은 메뚜기들이 서로 먹힘을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리짓는다는 주장이다. 메뚜기는 대개 식물을 먹는 ‘채식주의자’이지만 서로 잡아먹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데, 어린 메뚜기들이 다른 어린 메뚜기들을 먹이로 취한다. 메뚜기 숫자가 늘어나면 먹히지 않으려 달아나는 과정에 서로 무리를 짓게 되고 이런 추세는 어린 메뚜기들이 성충이 되어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반복된다는 것이 영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 공동연구팀의 주장이다.(<커런트 바이올로지> 2008년)
숫자 임계설은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처럼 메뚜기 역시 행동을 함께하기 전에 충분한 숫자로 부대가 늘어날 때까지 본능적으로 기다린다는 가설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 연구팀은 ‘전환점’(티핑 포인트)이라는 변화 포인트를 물리학 모델 등을 이용해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실내에 멕시코 모자처럼 생긴 원뿔형의 생물 검정판을 만들고 그 안에 메뚜기를 풀어놓았다. 메뚜기가 별로 없을 때는 제멋대로 무리를 짓다가 어느 정도 밀도가 높아지면 무리는 하나로 짓지만 행진 방향은 수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1㎡당 20마리의 밀도가 되면, 곧 임계전환점이 되면 메뚜기들은 즉시 떼로 모여 한쪽 방향으로 나아갔다.(<사이언스> 2006년)
영국 옥스포드대 연구팀은 신경화학적 작용이 메뚜기를 무리짓게 만든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연구팀은 사막메뚜기들이 해롭지 않은 독립 개체들에서 식욕이 왕성한 무리 곤충으로 변하게 만드는 것은 뇌 화합물인 세로토닌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전 연구에서 사막메뚜기들은 사막 환경이 건조해지면 먹이를 찾느라 점점 가까이 모이게 되고 서로 기어오르고 밀칠 때 뒷다리를 건든다거나 다른 메뚜기를 보거나 냄새를 맡는 등 자극을 받으면 왕성한 식욕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었다. 옥스포드대 팀은 메뚜기가 떼를 지어 왕성한 식욕을 보일 때 혼자 있을 때보다 세로토닌이 3배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거꾸로 물리적인 군집 자극을 주더라도 세로토닌 분비를 억제해 유순한 단독형으로 남아 있게도 하고, 세로토닌 자극제를 주입해 신체 자극 없이도 무리짓는 행동을 하도록 할 수 있었다. 이들 화학제는 우울증 임상시험에 쓰이는 세로토닌 조절용 치료제이다. 과학자들은 세로토닌 양이 충분하도록 만들면 메뚜기들이 무리지어 왕성한 식욕을 보이는 현상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사이언스> 2009년)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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